통일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덧 우리 생활에 일상화가 되었다. 남북관계의 전개 과정을 보면 갈등과 협력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통일에 대한 관심도나 북한에 대한 이해력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은 쉽지 않다. 통일 그 자체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통일의 방향이나 구체적인 방법에 들어가면 늘상 국민들 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 남북 적대적 관계에 비교한다면 우리는 지금 통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이제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고 비록 교류협력도 단절과 진행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통일은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야말로 통일의 시대다.
사실 통일은 통일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통일된 환경에서 살아가야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결코 경원시할 수 없다. 체제나 제도를 통일했다고 할지라도, 통일의 완성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의미다.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 이후 사회적 갈등이 적지 않게 노정되었다. 다시 말하면 체제가 통일되었다고 할지도 통일된 체제 내에서 삶을 영위하는 구성원들이 사회·문화·제도 등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상호 공동체의식을 지닐 수 있었을 때, 통일은 완성될 수 있다.
그래서 통일과정이나 통일 이후를 구성원들의 갈등을 축소하고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체의식 함양은 통일과정이나 통일 이후 이질화, 분리, 차별, 불평등 등을 축소시켜 남북한 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사고를 형성하는 것이다.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통일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말로는 통일을 이야기하면서도 통일 이후 나타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삶의 모습에는 그렇게 관심을 지니지 못했다. 이데올로기적 대립, 북한 정치체제의 특수성, 북한 경제 위기 등을 강조하다보니 상대적으로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이 상호 맞이할 수 있는 갈등문제는 그렇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통일 지향한다면 이제 이런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통합과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도자의 리더십 말이다. 통일은 정략적 차원이 아니 남북 주민 간 상호신뢰, 우리의식, 그리고 통일국가에서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심리적 통합을 만들어 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지도자들은 당장 남북문제 현안에 매달려 통일 이후 다가올 문제를 해결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데는 인색하다.
우리 시대의 위기상황 극복과 관련해 이순신 리더십이 자주 등장한다. 이순신이 살던 시대는 위기의 시대였다. 그는 분명한 리더십과 비전을 지니고 시대적 상황을 타개 하고자 했다. 이순신에게 우선 순위는 백성이었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전쟁을 치러냈다. 전란기간 중 유리걸식하던 백성들에게 농사짓고 정착할 수 있는 장소를 우선 마련했다. 백성들은 보답으로 자신들이 먹을 것이 없음에도 군량미를 보탰다. 배려가 보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집무실인 운주당은 개인공간이 아니었다. 밤낮없이 부장들을 불러 모아 왜적을 물리칠 방도에 대해 토론했다. 지위가 낮은 군졸이라도 방도가 있다면 운주당에 가서 서슴없이 의견을 개진했을 정도다. 명량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온 어부들의 체험과 상식을 듣고 확인하여 이를 작전에 반영했다. 명량대첩은 그래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의 리더십은 배려하고 소통하여 화합을 만들어 냈다.
통일로 가는 과정은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을 축소하고 공동체의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통일을 정치적 논리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부각시킨다면 갈등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이순신을 활용하기 보다는 그의 리더십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는 혼란의 연속일지 모른다. 소통과 배려를 통해 군령미를 화합을 이끌어 낸 이순신 리더십의 실천이 필요한 시기다.
문장순(중원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