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북한이 말하는 조국해방전쟁전승기념일이 다가오는 7월 27일이다. 정전협정체결일로 부르는 우리와 표현 자체부터 다르다, 물론 기본 인식도 다르다. 종전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두고 남북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남북의 상이한 인식은 통일에 대한 간격을 느끼게 한다.
북한은 정전협정체결일에 역사적인 날로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다. 1953년 7월 28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거행했다. 1973년에는 이 날을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로 지정했다가, 1996년부터는 아예 '전승절'로 부르면서 국가 명절로 격상시켰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첫해인 2012년에 전승절을 며칠 앞두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전승업적으로 빛나는 7·27을 승리자의 명절로 성대히 경축하여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했고 전국 노병대회를 개최해 6·25전쟁 참전자들에게 깍듯한 예우를 했다.
노병대회는 2012년 이후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년 열리고 있다. 이 대회가 김일성 시대에 단 한 차례였다는 점에 비하면 김정은 시대에는 전승절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비상상황임에도 양덕온천문화휴양지에서 7번째 노병대회를 개최했을 정도다. 더구나 2013년에는 전승절 관련곡인 '7·27 행진곡'을 선보이면서 당과 군대와 인민이 시대와 역사 앞에 자랑스럽게 세운 승리의 음악기념비라고 치켜세웠다.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유달리 전승절에 대한 정성을 쏟고 있다.
그럼 북한은 왜 이렇게 7월 27일 승전일로 볼까? 상식적으로 보면 6·25전쟁에서 북한이 경제적으로 입은 피해가 남한에 비해 훨씬 크다. 영토 측면에서도 남한은 개성시, 연백군 등을 북한에 빼앗겼고 북한은 연천군, 철원군, 인제군 등 강원도지역을 잃었다. 단순하게 전쟁 전후의 영토넓이를 따진다면 남한이 400㎢를 더 차지했다. 북한이 전쟁 승리라고 주장해야 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북한은 전쟁을 일으킨 도발자로서 남조선 해방이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패배자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를 주장한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튿날 김일성은 '정전협정체결에 즈음하여'라는 방송연설에서 6·25전쟁을 서양제국주의과 미제와 이승만 매국도당에 대항에서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3년간에 걸친 투쟁의 결과이며 쟁취한 역사적 승리라고 언급하고 있다. 정전협정문은 미제국주의가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으로 주장한다.
결국 전쟁은 미제국주의가 남한과 함께 일으킨 것이고 자신들은 그 전쟁에서 조국을 방어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은 휴전협정체결 직후 연설에서 전쟁으로 인해 조국 북반부에 수립된 인민민주주의제도를 수호하였으며 민주개혁의 성과들과 민주기지를 수호했고 그로 인해 조선인민들이 공화국북반부에서 혁명역량을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계속 강화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게 되었고 미제의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면할 수 있게 되었고 전민족의 최대의 숙망인 조국의 완전통일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 승리의 날을 기념하는 경우는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전쟁을 벌였던 연합국, 영국 등 유럽의 일부국가들, 미국, 러시아 등도 각각의 날짜에 승전기념일을 지낸다. 이 경우 독일과 일본의 항복선언을 근거로 한다. 6·25 전쟁 이해당사국 중 항복을 선언한 국가는 없다, 북한은 자신의 논리, 자신의 입장에서 승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승전절을 활용해 6·25전쟁의 도발자를 남한과 미국으로 만들고 내부적으로 미국에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결집시켜 체제유지와 정당성을 강화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켜 정치적으로 활용할 경우, 일시적으로는 권력유지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체제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