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에 내뱉는 막말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익숙하기까지 하다. 지난 24일 발표된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문에는 우리에게 모욕적인 단어들이 넘쳐난다. 이 담화에는 남한을 향해 미국의 충견, 남조선졸개, 남조선것들, 들개, 멍텅구리들, 천지바보들 등의 용어들이 담겨있다. 지난 8월 김여정 담화에서는 우리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비난하며 대통령에 대해 "인간 자체가 싫다"는 표현까지 했다. 개인 간에도 이런 수준의 용어들이 오간다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번 담화를 내용상으로 보면 남한이 북한의 ICBM 발사 등 각종 도발에 대해 대북독자제재를 추진하자 이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보인다. 제재를 가하면 한반도가 위태로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끌어 올리고 여기다가 내부분열까지 부추기고 있다. 현 정부가 자꾸만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데도 국민들은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그것이다.김여정의 담화는 김정은 총비서의 의중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 정권의 공식입장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대남·대미부문에 김여정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북한 권력구조상 김정은 총비서의 의중을 반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담화에서 사용된 용어들은 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신중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번 담화도 북한 나름의 고도의 전략을 담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김여정은 무엇을 노리고 이런 막말을 쏟아 냈을까? 담화 속의 내용처럼 더 이상 윤석렬 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한·미의 독자제재가 두려운 것인지, 대화의 물꼬를 트라는 신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복선을 깔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한·미의 대북독자제재에 대한 반응일 가능성이 높다. 유엔 안보리차원의 대북제재가 중·러의 비협조로 계속해서 무산되자 한·미는 독자적인 대북제재로 선회했다. 14일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대북 제재 회피에 관여한 북한의 개인 15명, 기관 16개를 독자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향후 북한 선박 밀무역, 사이버금융범죄 등의 분야로 제재를 늘려나갈 것이라는 계획도 발표했다.특히 암호화폐 탈취를 통한 북한의 핵·미사일 자금을 조달한다고 판단한 한·미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한으로 들어가는 비정상적인 사이버금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북한이 핵실험 등의 도발이 있을 경우 불법적인 금융거래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미국은 북한이 사이버금융 해킹으로 벌어드리는 수익이 년간 약 2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암호화폐 해킹으로 탈취한 수익이 10억 달러다. 피해를 입은 국가나 기업 등은 점차 정교해지는 북한의 사이버금융 해킹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은 사원모집에서 북한 해커들을 가려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할 정도로 북한 사이버 해커가 골칫거리로 등장한지 오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반복되자 이제 사이버 해킹에 대한 제재조치를 한국도 검토하고 있다. 한미가 공조하는 모양새다. 북한이 금융해커로 벌어들인 돈이 미사일과 핵 개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에 북한 무역총액이 약 32.4억불이다. 무역총액에 비교한다면 금융해커로 벌어들이는 돈은 상당한 액수다. 이를 한·미가 제재한다면 북한으로서도 큰 타격이다.
그래서 김여정의 막말은 한·미 대화를 원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핵실험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제재가 따르고 북한도 힘들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핵실험 등과 같은 새로운 도발을 하기 전에 한·미와 만남을 원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라는 전제에서 한·미도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그에 대해 응징한다는 방식도 필요하지만, 설득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남북이 통일을 원한다면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남북이 다시 큰 상처를 입는다면 통일은 멀리 달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