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2022.01.24 15:43:14

문장순

통일과 평화연구소장

지난 30년 동안 비핵화가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의 중심에 자리했다. 1993년부터 시작된 북한 핵문제는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전진과 후퇴를 가늠하는 지렛대로 작동하고 있다. 핵문제 해결은 우리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이다.

1980년대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사회주의의 포기보다는 체제유지를 선택했다. 동시에 생존을 위해 핵에 관심을 기울였다. 겉으로는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핵을 개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즉, 1987년 남한에 비핵지대, 평화지대 창설을 제안하고 1992년에는 남북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했지만, 북한은 영변지역에 원자로를 가동했다. 북한의 핵에 대한 이중성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에 의해 포착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북핵은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미관계에서 중요한 의제로 자리매김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북핵문제 등장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크게 변화한 모습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보수, 진보 정부의 교체가 몇 차례 이루어지긴 했어도 근본적으로는 핵문제를 전제로 하면서 경제협력, 인도적 교류협력, 문화협력 등을 추진해왔다. 핵문제 해결을 우선으로 하느냐 아니면 협력과 교류를 우선으로 하느냐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예컨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신경제구상 등은 서로 부문적인 정책고려사항이나 우선순위는 달랐지만,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정책이었다. 한마디로 경제적 지원이나 보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교류협력보다는 체제안전에 더 관심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체제보장에 더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교류협력은 제자리걸음이고 북한의 핵은 점차 고도화되어 가고 미사일 도발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와서 1월에만 미사일 도발이 4번이다. 2018년부터 지켜오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이라는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철회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대북정책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히려 대북정책으로 인한 남한의 내부적 갈등만 노정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의 대북정책을 반추하고 정파적 관계를 뛰어넘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첫째, 장기적 측면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 성과만을 고려할 경우 이벤트적인 효과는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지원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할 수 있다. 경제적 지원과 체제보장을 동시에 가능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다가가야 가능한 부문이다. 장기적 대안은 정치적 고려도 줄어들게 할 수 있어 남한 내부의 남북문제에 대한 갈등도 축소시 킬 수 있다.

둘째, 변화하고 있는 국제정세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동안 북핵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입장이 중요했다. 비핵화 협상은 남·북·미 3자 구도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가 강해지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다.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버티어 낼 수 있는 것도 중국이라는 지원국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서 핵협상은 단순하지만, 중국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좀 더 복잡해진다. 남한의 대북정책이 장기적이고 지속성을 지닌다면 국제사회의 간여를 축소할 수도 있다.

따라서 향후 대북정책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행될 경우 남한 내부는 물론이고 북한도 공유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대북정책은 통일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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