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공세의 선봉에 서고 있다. 북한체제의 성격상 최고지도자를 두고 대남문제에 직접 지시권을 행사한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김정은의 암묵적 동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이 꽤나 파격적이다. 일부 외신에서는 김여정을 김정은의 후계자로 까지 언급하기도 한다.
김여정의 위상이 어느 정도까지 확립될지 알 수는 없지만, 북한 권력체제에서 제2인자의 등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끔 2인자라는 지칭되는 이들이 등장하지만 최고권력자의 보조자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재 대남전략에서 김여정의 위상은 예사롭지는 않다. 그동안 대남, 대외관계에서 개인 명의로 담화를 내고 실제 군부를 동원해서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보면 지금까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김여정이 실체 후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아니면 일시적 필요성에 의한 것인지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김여정은 현재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제1부부장 등의 직책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의회격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도 겸직하고 있다. 제1부부장이라는 직책이 당의 10개 전문부서 중 어느 부서에 속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제1부부장의 지위로 정치국 후보위원까지 진입한 경우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는 조용원 정도다. 이런 김여정이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5·26 판문점, 2차 정상회담, 9·18 평양 3차 남북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 북미정상회담 준비과정에 적극적으로 간여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회담 관련자들이 문책받는 과정에서 김여정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잠시 해임되기도 했다. 1년만에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다시 복귀했다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를 반증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여성의 정치적 위상은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질적인 권력을 지녔던 여성은 찾기 힘들다. 그래도 권력 행사에 접근한 여성을 찾는다면 박정애나 김경희 정도다. 김경희의 정치적 위상이 백두혈통의 요소가 강하다면 박정애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는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경공업부장, 4차례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기는 했지만, 최고지도자의 권력을 위임받아 전권을 행사한 경우는 없다. 김여정과 같은 백투혈동으로 의례적인 수준에서 활동했던 여성정치인으로 볼 수 있다.
박정애는 북한체제 초기에 걸출한 여성정치인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김일성과 협조적 관계를 맺었다. 북조선노동당 창립부터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당중앙위원회에 진출했고 1945년 11월 민주여성동맹 위원장, 1946년에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겸 부녀부장, 1953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정치위원, 1956년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 때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조직위원을 역임했다. 상무위원, 정치위원, 조직위원은 현재의 정치국과 성격이 유사하다. 1956년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당시 서열 5위 수준이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8차례나 역임했다. 정부대표단으로 소련·동유럽·중국·베트남 등을 순방해 외교에도 기여했다. 외형상에서 보면 북한 여성정치인 중 권력핵심에 가장 접근한 경우다. 실제 박경애는 당 대회에서 의제에 대한 보고할 정도로 위상은 높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등장하지 않고 있다.
김여정은 제도상의 위상으로는 박정애나 김경희에 비해 높지 않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고 있는 김여정의 역할은 제도적 위상을 넘어서 김정은 위원장을 대신이라고 할 정도로 역할이 크다. 아마 김여정이 지금보다 위상을 높이고 싶으면 강도 높은 도발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야 백두혈통이라는 성분을 넘어서는 정치적 위상을 지닐 수 있다. 여기다가 이 과정에서 가부장성이 강한 북한 사회 분위기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적 역할이 부재하다시피 한 북한의 정치적 풍토를 감안한다면 김여정의 역할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나마 뒷받침을 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