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을 체결한지 68년째다. 정전은 말 그대로 전투를 멈추는 행위다. 전쟁의 종료와는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휴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반도는 한국전쟁에 대한 정전협정이 발효된 이후에도 전쟁과 관련한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 나아가고 이어 통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다. 정전협정 서문에 보면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이라고 규정돼 있다. 정전협정이 평화체제로 이행될 때까지 지속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왔다. 그러나 아직 진전이 없다. 평화체제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장치와 구성원들의 신뢰구축이 필요하다. 전자는 평화를 관리하기 위한 절차, 규정, 합의 등을 의미하고 후자는 구성원들의 평화체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법·제도적 측면에서 군비통제, 축소 등을 포함하는 전쟁방지와 관련된 각종 합의를 해야 한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구축은 법·제도적 장치를 바탕으로 사회문화적 측면 등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평화가 정착되고 평화체제로 전진할 수 있다. 그래서 평화체제는 고정된 것이 아닌 평화로 진전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동안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등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문,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2018년 판문점선언, 2019년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 등은 평화체제를 위한 일련의 노력이다. 특히 10·4선언 4항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부문을 명시해 남북이 평화체제에 대한 의지를 표출했다. 이후 판문점선언에서도 평화체제에 대한 협력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들어다보면 전제되는 부문이 있다. 핵문제가 연결돼 있다. 판문점선언 3항의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라는 부문에서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다. 평화체제로 가기 전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평양공동선언에서는 한반도를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비핵화의 필요성 부문이 포함돼 있다. 바로 북한의 비핵화가 평화체제로의 출발에 중요한 지렛대가 되고 있다.
이는 2018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난다. 이 회담에서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을 합의했다. 이 합의에서 평화체제 출발을 가늠할 수 있는 종전선언은 빠졌다. 미국은 비핵화가 전제돼야 평화체제가 출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뒤이어 2019년에도 북·미 정상이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회담을 개최했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당시에도 미국의 핵 요구와 북한의 대북제재 해제 요구가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북핵문제를 배제한 한반도 평화체제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국제역학 구조상 남북이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가능하지는 않다. 그것은 국제법상으로도 모순을 안고 있고 이를 국제사회가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당장에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변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남북미 중심에서 벗어나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좁혀가고 있다. 중국도 정전체제의 당사자로서 평화체제로의 전환과정에 참여 의중을 비추고 있다. 물론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이 4자 회담에 참여한다면 기여할 수 있는 부문을 찾을 것이다. 당장에 북미회담의 여지가 없고 우리로서도 남·북·미가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