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에 연일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화답이다. 제안 이틀 만에 북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이 종전선언이 흥미있고 좋은 발상이라고 응답했다.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철회라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다. 그런데 다음날 또 김여정 부부장은 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정상회담, 종전선언 가능성을 언급했다. 전날보다 한 단계 진전된 내용이다. 두번째 담화에서는 김여정 부부장이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전제하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북한의 대화의지는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북한이 과연 종전선언의 의지를 지니고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단언하기 쉽지는 않다. 북한은 지난 8월 초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김 부부장의 비난 담화 이후, 북한의 남북통신선 단절,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남북관계의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북한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대해 재빠르게 반응했다. 당면한 경제문제가 주요 원인일 수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다가 코로나19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나마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교역도 여의하지가 않다. 2019년 중국과의 교역이 약 33억 달러에서 2020년에는 약 5억 달러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대외교역량의 95%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교역의 감소로 북한 경제가 더욱 버티기 힘들지 모른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북제재의 해제가 절박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북대화를 선택했을 수 있다.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남북이 종전선언과 함께 대북제재도 동시에 풀어야 할 과제다. 문제는 종전선언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종전은 말 그대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전쟁관련 당사자가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만 하면 된다. 선언 자체는 간단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첫째, 남북의 의지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통일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남북이 평화를 진전 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무의미하다. 일시적인 필요성에 의해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그 후 부차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남북 간 갈등만 양산하고 선언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수 있다. 그동안 남북교류협력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왔듯이 정전선언을 해놓고 그 후속 조치가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이 되지 않는다면 선언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즉, 정전선언이 단순히 정치적 이해에 얽매여서 이루어진다면 평화체제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다.
둘째, 종전선언은 이해당사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남·북·미가 하든지 아니면 남·북·미·중이 같이 하든지 어느 형태든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중도 이에 호응했다. 미국은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남북대화 노력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정전상태에서 종전관련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하는 것을 지지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미국은 원론적 수준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에 적극적인 입장을 언급했다. 종전선언에 관련 당사국들이 참여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일치하는 것만 아니다. 그래서 종전선언의 당사국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외교적 역량이 중요하다.
셋째, 현안문제의 해결이다. 북한의 남북사무소 폭파나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적 행위, 비핵화 등은 당장 남·북·미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요소들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적 정책 철회도 이런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미국은 미사일이나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진전된 행위가 없다면 종전선언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남·북·미가 현안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야 종전선언의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래야 종전선언이 이벤트가 아닌 한반도 평화를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