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정치적 논쟁거리로 변하고 있다. 미국이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외교관이나 공식대표를 파견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유럽 등 서방국가들은 물론이고 일본, 호주 등도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 역시 부담을 지닐 수밖에 없다. 올림픽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종선선언까지 염두에 두었던 터라 난감해진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물론이고 북·미회담까지 성사시켰다. 우리 정부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통해 또 하나의 평화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 등이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선언으로 문재인 정부로서도 선택지가 좁아졌다.
미·중 갈등이 구체적으로 표면화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미국의 입장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일단 미국은 한국에 대해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보이콧 동참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올림픽에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급 인사가 참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물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명분으로 중국에 온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 방문의 명분이 생긴다. 그래서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고리로 종전선언, 남·북정상회담, 한·중정상회담까지 기대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 반가울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종전선언은 해결될 수 없다.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이 아니라도 정부의 종전선언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은 여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의중이다. 우선, 북한의 입장에서는 내년에 남한의 선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선거 후 새 정부가 구성될 텐데 올림픽 기간 중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내용을 새로운 정부가 받아 줄 것이라고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북한은 새로운 정부와 협상을 통해 남북관계의 틀을 짜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원하는 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다. 북한은 종전선언 조건으로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 한미연합훈련 중단,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 조건을 들여다보면 남한 단독으로 결정하기 힘든 내용이다. 북한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관계개선을 원하는 것이다.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가 필요하다. 미국은 대북제재 해제를 비핵화와 연결 지우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조치와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한과의 회담에 나설 가능성이 없다. 미국과 북한은 상호 요구하는 조건이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당사자들이 만나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정부가 중재에 나설 수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북한이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국제스포츠대회 등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한 실적이 있어야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 굳이 참가하겠다면 8월의 도쿄 올림픽에서 러시아처럼 선수 개개인의 자격으로 참가해야 한다. 이 경우 올림픽에서 북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여기다가 북한은 코로나19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거의 2년 동안 대외관계를 중단하다시피 했다.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방문 또한 부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올림픽 기간 중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은 낮다.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북한을 설득할 가능성은 있다. 설득의 내용은 공개·비공개 다양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한 설득에 성공한다면 남·북·중 간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거나 종전선언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전선언의 당사자 중 하나인 미국이 빠진 상황에서 종전선언으로까지는 이어질 수는 없다. 베이징동계올림픽 중 남·북·중의 만남에서 중국은 명분이라도 얻을지 몰라도 남북의 정상회담은 단순 만남에 거치는 정치적 이벤트가 될 수 있다. 남북정상이 만나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별로 넓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