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스타그램 - 청주 운천동 동네책방 '뒷북'

2019.03.19 13:35:28

[충북일보] 지연은 무슨 일을 더디게 끌어 시간을 늦춤을 나타내는 명사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인 오후 5시, 운천동 골목에 켜지는 작은 불빛은 장지연씨가 직장에서 퇴근해 문을 여는 동네책방 '뒷북'이다. 이름 때문인지 지연씨의 시계는 남들보다 조금 늦다.

책을 좋아하는 그는 밤에도 마음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찾다 지난해 직접 늦은밤 책읽는 뒷북의 문을 열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지연씨는 어둑해진 밤에도 책을 읽고 싶었다. 집에서 읽을 수도 있지만 오롯이 책을 위한 공간에서 책을 봤으면 했다. 번화가에는 환하게 불이 켜진 저녁 시간인데도 쉽게 닿을 수 없는 도서관이나 서점이 아쉬웠다. 누구나 편안하게 책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그렸다.

마음 속에만 품고있던 그녀의 갈증은 개인적인 사연으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졌던 시기와 맞물려 작은 골목 뒷북과 만났다.
ⓒ뒷북 인스타그램
어려서부터 좋아했지만 왠지 말하기 어려운 취미였던 '독서'는 자신이 꾸민 공간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됐다. 읽어보고 좋았던,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들을 위주로 뒷북을 채우다보니 뒷북의 선반에는 그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장르는 다양하다. 가벼운 에세이나 독립출판물부터 제법 묵직한 이야기가 담긴 인문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읽어서 재미있는 책이나 읽고나서 다른 관점을 갖게하는 책이 각각의 매력으로 선반에 안착했다.

지연씨에게 책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도구다. 책이 가진 이야기만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읽어낼 수 있지만 책을 덮은 후 생각의 변화를 통해 같은 상황이 다르게 보여지기도 한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또한 독서의 연장이다.

특히 독립출판물은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도구로 활용된다. 한 사람 한사람의 글을 읽다보니 서로 다르게 살아왔지만 같은 시대를 겪은 세대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전혀 다른 주제와 장르 속에서도 공통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뒷북에 들어서는 이들은 대부분 지연씨와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다. 직업과 나이 등 겹칠 것 없는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거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즐겁다. 소통을 통해 독서 경험이 확장되는 재미를 찾았다.
이미 지나간 영화를 상영하는 뒷북 심화반(심야영화반)도 꽤나 활성화된 모임이다. 못 보고 지나가기 아쉬웠던 영화들을 작은 공간에서 함께 본 뒤 영화에 관해 깊은 대화를 나눈다. 몇 년 전 영화도 '뒷북'에서는 뒷북치기 좋은 콘텐츠가 된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책을 소개하는 일도, 오래된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수익성을 첫 번째로 놓았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콘텐츠들이다. 지연씨가 이런 '뒷북'을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이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무엇으로 완성된다. 전문가는 필요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이 모여 시대의 이야기가 된다. 공감되는 부분이나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른 시대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기도 한다.

지연씨에게 책은 현실도피였다. 현실을 피하고 싶어 도망간다기보다는 현실이 아닌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통로였다. 소위 나쁜 책들도 많아진 시대에 나쁜 책을 거르는 힘도 독서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지연씨는 앞으로도 책 안에서 책을 매개로 하는 만남의 장을 확대하고 싶다.

다양한 경로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읽어본 이들의 이유있는 추천이 더 와닿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늦은 오후 운천동 골목을 찾아가보면 좋겠다. 조근조근 책을 소개하는 지연씨의 반짝이는 눈빛이 그 책의 매력을 더할 것 같다. 한적한 골목에서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는 곳. 늦었지만 뒤쳐지지 않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공간. 늦은 밤, 책 읽는 뒷북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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