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지트를 찾아서 - '담배건조실' 작가 신재흥

아련한 추억이 깃든 '문화 사랑방'
15년전 음성 내려와 1천 300여 작품활동
그림으로 둘러싼 화실 작가들 만남의 장
전국 담배건조실 화폭 담으며 '인생 2막'

2010.09.05 18:32:22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우리들 기억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담배건조실을 소재로 화폭에 담아, 잊어버렸던 추억을 되살려 감흥에 젖게 하는 마력을 지닌 담배건조실 그림으로 유명한 신재흥 화백의 화실을 찾았다.

애칭처럼 따라 다니는 담배건조실이 유독 많았던 음성에 그의 화실이 있다.

음성읍 감우재 고개를 넘어 신재흥 화백의 화실 가는 플라타나스 터널 도로의 전경

청주에서 충주방향으로 가다보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를 지나게 되는데 자동차로 이곳에서 5분쯤 내달려 금왕방향으로 좌회전해 쭉 뻗은 반기문로를 타면 끝자락에 멋스러운 음성문화예술회관이 보인다.

음성문화예술회관을 우로 두고 금왕방향으로 굽이굽이 플라타나스 터널 도로를 5분쯤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감우재를 넘어 300m 정도 앞 내리막 길 옆에 신 화백의 화실이 있다.

산과 들에 둘러싸여 있는 신재흥 화백의 화실.

산과 들로 둘러싸여 있는 신 화백의 화실에 들어서면 온통 벽면이 그림으로 둘러쌓여 있다. 그림 외에는 간간이 찾아 오는 수강생들에게 차 한잔 대접할 만한 응접 테이블이 전부일 정도로 소박 화실이다. 하지만 이 곳을 찾는 신 화백의 수강생들은 각종 전시에 참여하고 있으며, 공모전과 해외전시 등에서 수상한 작가로써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만남의 장소다.

신재흥 작가의 담배건조실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화실 내부의 모습들.

이 화실은 담배건조실 그림을 비롯해 농촌풍경, 들꽃그림 등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어 누구나 편하게 들러 관람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랑방같은 곳이다.

그의 화실에서 들어서니 눈에 가장 띄는 그림은 역시 담배건조실이다. 신 화백은 음성을 비롯한 충북의 제천, 영동, 괴산 등과 강원도 영월, 원주 등 이제는 찾아 보기 힘든 담배건조실을 찾아다녀 그의 화폭에 담아 냈다.

화실 구석구석 그의 손때가 안 묻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의 손길이 느껴지는 이 곳은 우리들의 추억을 화폭에 담아내 저장해 두는 추억창고라는 생각이 든다.

담배건조실로 제2의 화가의 길 걸어

신재흥 화백의 작품들

다작(多作)의 화가로도 널리 알려진 신재흥 화백은 미술계에서 야외 사생으로 명성을 얻은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담배건조실 신재흥 작가로 제 2의 화가의 길을 걷게 됐을까?

서울 덕수궁 근처에 살았던 신재흥 화백은 어릴적부터 예능분야에서 특혜를 받고 자랐다. 당시 덕수궁 끝자락에 국립공보실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전시회와 공연이 열렸고, 신 화백은 항상 그림과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와 재미삼아 똑같이 그리기 시작하면서 처음 붓을 잡게 됐다.

초등학교 때 신 화백은 친구들 사이 엄친아였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데다 그림 솜씨도 좋아 친구들 사이 부러움을 사는 아이였다. 되돌아보면 매일같이 국립공보실을 오가던 덕수궁 돌담길이 그를 평생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길로 인도한 길이 되었는지 모른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화가로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야외 사생에 심취해 있었다. 이때는 자동차도 귀했던 시절이라 화구를 들고 발길 닫는 대로 걸어서 전국 누비며 사생에 푹 빠져 있었다.

이렇게 야외 사생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골에 가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이 꿈이 되어 버렸다. 당시 아팠던 아내를 위해 요양차 음성이란 곳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는 음성이란 곳에 정서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담배건조실이었다고 전했다.

서울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담배건조실이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때부터 음성을 비롯한 충북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담배건조실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음성 / 남기중기자 nkjlog@hanmail.net

"이 시대의 아픔을 화폭에 담아내야"

신재흥 화백

신재흥 화백은 한때 서울에서 잘나가는 화가였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이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고, 깊이 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신에 대한 투자를 위해 이제껏 그림 그리는데만 전념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다작 화가로 손꼽힐 정도인 신 화백은 15년 전 음성에 내려 와 1천3백여 작품을 만들어 냈다.

신재흥 화백은 "자꾸 나이가 들어가니까 나 자신을 덜어내게 된다"며 "옛날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깐 내가 열심히 해왔던 일도 별거 아니구나 생각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신 화백은 "인생이라는 것이 공부하면서 사는 것 같다"며 "화가도 사회, 정치, 환경 등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은 공부를 통해 시대의 아픔도 표현해 낼 줄 알아야 된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깊이 있는 작품세계를 느끼게 된다.

더욱이 신 화백은 벌써 32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서울에서 3번, 충북에서만 29번 개인전을 가졌다. 이는 그가 치열하게 그림만 그려왔음을 증명한다.

30여년을 전업작가로 살아온 것이 돌아보면 가족의 희생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이라 생각되어 지독할 정도로 작품활동하고 있는 신재흥 화백은" 앞으로 화가로서 좋은 결과가 생긴다면 남김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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