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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남해를 여행하다보면, 푸른 바다 위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양식장의 모습이 장관입니다. 물고기 떼들이 햇살을 반사해내는 모습이 눈부시네요. 거센 파도를 이겨내고 바다 한가운데서 꿋꿋하게 커다란 그물을 밧줄로 동여매는 인부의 모습도 가히 역동적입니다. 그 멋진 광경에 취해 있을 때, 바다 양식장에서 그물코를 잇던 한 젊은이가 투덜댑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뭐해요? 작년에는 몹쓸 태풍이 몰려와 고기와 어망을 모조리 휩쓸어버려 일 년 농사 다 망쳐버렸거든요"

아, 이 짧은 순간에도 서로 다른 시선이 공존하는군요. 평화로운 풍경 안에 보이지 않던 아픔을 미처 보지 못한 거죠. 겉만 보고 감탄하던 생각이 움츠러들 즈음 한 노인이 말을 잇습니다.

"얘야, 그동안 몇 해 동안 아무 탈 없이 양식업으로 잘 살았잖아. 바다도 땅과 같은 거야. 이렇게 태풍이 갈아엎어야 다음 양식이 잘되는 법이야. 물갈이가 되어서 새로운 땅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돼"

그 노인의 말에 생각의 눈이 번쩍 떠집니다. 새로운 땅이라니요. 그야말로 천지개벽인 거죠. 그 천지개벽이 젊은이의 눈에는 아픔과 불행으로 다가오지만, 지혜 많은 노인의 눈에는 신천지로 보이는 것이죠. 새로운 희망을 본겁니다.

겨울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네요. 이맘때면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이 시골집 담장을 넘어 등불처럼 불을 밝히죠. 붉은 감은 은근히 식욕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숙성된 삶의 모습처럼 보여 편안해집니다. 감이 익으면 곧 떨어지죠. 감은 생명을 다했지만, 씨앗은 땅속으로 파고들어,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울 것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라는 의미죠. 비워지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다시 비워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삶은 꾸준하게 대칭과 비례의 균형을 이루면서 흘러갑니다.

겨울이 가까워 오면 하늘을 향해 온 몸을 뻗치던 나무들은 생장을 멈춥니다. 사람들도 가을이면 추수를 하고 긴 겨울을 날 준비를 하죠. 나무도, 사람도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봄을 다시 맞이하려는 것입니다.

계절의 순환을 오행으로 살펴보면,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는 시기가 수(水)입니다. 흔히 물을 연상하지만 단단한 씨앗을 담아 겨울을 견디는 모습이죠. 다시 봄이 오면 수(水)인 씨앗이 싹이 나니 목(木)으로 자랍니다. 다시 나무에서 꽃이 피니, 화(火)가 됩니다. 꽃이 피고 나면 열매가 맺히는 것은 순리죠. 열매를 채우기 위해 흙이 바빠집니다. 토(土)가 되는 것이죠. 열매는 뜨거운 태양과 바람과 대지의 에너지로 익어갑니다. 무르익은 열매를 수확하니, 금(金)입니다. 그 열매는 세상과 제 살을 나눈 뒤, 씨앗 하나 남겨 땅에 묻힙니다. 다시 수(水)가 되는 거죠. 세상은 그렇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오행의 기운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때로 나무들은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무의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도 잎새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것이다…(중략)…아래로 내려가 제 뿌리가 엉켜 있는 곳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성복 詩人의 '나무에 대하여'

나무는 하늘로 자라다 겨울이 되면 비로소 캄캄한 땅 아래로 시선을 돌립니다. 매양 하늘만 쳐다보며 키만 키운다면,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질 겁니다. 오래 산 나무들은 이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마음이 깊어가는 거죠.

작년, 태풍으로 한꺼번에 물고기를 잃어버린 젊은이는 한동안 좌절의 어둠속에서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나무는 어둠속 고요함을 견뎌내는 것이죠. 젊은이가 노인의 시선을 얻기까지 나무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다보면 순환의 묘리를 얻게 되겠지요. 갈아엎어진 바다가, 새로운 땅으로 다가오는 마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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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