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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한 달 전, 수련원 본부 직원들이 맨발 걷기-跣足步行을 한다기에 마음 편히 따라나섰다. 어렸을 때 고무신은 비싸서 꿈도 못 꾸었고, 대부분 평평한 나무 바닥에 타이어를 가늘게 썰어 발등 걸개를 만든 일본 신발 '게다'를 신고 다녔다. 그런데 미루나무 게다로 땅을 끌고 다녔기 때문에 뒤축이 금방 닳아버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 아이는 게다를 허리춤에 달고 맨발로 등하교를 했었다. 이런 기억으로 맨발 걷기는 자신 있었는데 신발 신었을 때는 그리도 곱던 길이 맨발로 대하니 온통 왕모래가 되고 날카로운 조약돌이 되어 발바닥을 괴롭힌다. 한 걸음 한 걸음 고통을 참으며 한 시간여 걸었는데 같이 걷던 옆 사람처럼 물집은 안 잡혔어도 발바닥에 난리가 났다. 덕분에 2, 3일간 발바닥을 느꼈어도, 전립선과 이명 그리고 꾸준히 하면 안경도 벗는다니 결단코 다시 도전해 보리라.

11월 5일 함양 상림 공원에서 맨발로 걸을 기회가 있었다. 걷다가 괴로우면 포기하고 신발을 신으려 배낭까지 준비했건만 꼼지락거리다 선두를 놓치는 바람에 신발을 보관소에 두고 출발했으니 천상 끝까지 가야 한다. 다행히 바닥의 돌들이 작아 발을 덜 찔렀고 부지런히 쫓아가느라 고통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러할지라도 발걸음에 집중하려니 길가의 사운정조차 보이지 않고 상림 공원의 가을 풍광이 눈에 들어올 겨를 없이 40여 분을 감내했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의연하게 걷는데 왕초보야 발에 신경이 쓰여 살금살금 걷느라 몸을 옹송그리지만 계속 걸었다.

다음날 오랜만에 낙가산을 가면서 기왕이면 맨발 걷기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맨발 걷기가 건강에 그리 좋다니 좋은 일은 빨리해도 오히려 늦고, 나쁜 일은 늦게 해도 빠르다 하지 않는가. 산길에서 이따금 맨발로 걷던 사람들도 봤거니와 영상 2도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최대한 걸을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신발주머니까지 들고 집을 나선 뒤 산길에서 맨발로 지면을 대하는데 느낌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수년간 걸었건만 산이 살아서 다가오는 듯하고, 소복이 내린 낙엽으로 폭신한 덕에 뾰족뾰족한 자갈돌도 견딜만하다. 골퍼가 그린을 제대로 느끼려면 맨발로 대하라 하더니 맨발로 걷는 산길은 등산화로 대하던 때와는 정말 다른 느낌이다.

산길에서 발로 접하는 낙엽이 사뭇 엄숙하다. 나무가 최선을 다해 일년을 보내고 감연히 갈무리한 결과가 낙엽이려니 잎새 하나가 귀하고 소중하다. 여러 계절을 함께 한 뒤에 헤어짐 당하는 낙엽의 심사는 어땠을까. 나무는 뿌리로 주위 나무들과 대화를 한다는데 이별을 앞둔 잎새와 어떤 말을 나누었을까. 너랑 헤어져야 내가 모진 겨울을 견딜 수 있으니 이게 최선이라고 설득했겠지. 이별이 못내 서러워 떠나지 못하는 잎은 바람이 도와주렷다. 남향 길이라 그런지 땅 기운이 따스하게 올라온다. 천지지만 만물지간에 내가 서 있으니 문자 그대로 天地人 三才요, 조심스런 발걸음에 나의 존재를 다시 깨닫는다. 가끔 보이는 가시 뾰족한 밤송이를 밟으면 안 되겠기에 더욱 발 앞을 주목하니 불가에서 강조하는 조고각하(照顧脚下)는 절로 되겠고 반구저기(反求諸己)도 덩달아 이루겠다. 이따금 길 파임 방지용 둥그런 나무에 발 아치를 자극하니 거참 시원하다. 퇴계선생이 번열(煩熱)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온계공에게 용천혈 주무르기를 알려 주었다는데 earthing으로 몸의 정전기를 내보내고 전립선도 좋아지고 발아치를 다시 세우며 용천까지 문지른다면 장수도 가능하겠단 생각이다.

맨발 걷기(跣足步行)로 산을 걸으면 선족 산행이요, 낙엽 위를 걸으면 낙엽 보행이다만 꾸준히 걸어 내가 모르는 몸의 허한 부분까지 보해 준다면야 참 다행이겠고.

인적없는 산속에서 오늘따라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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