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장대하고 위대하게 빨리 다가온다. 남녘만이 아니라 청주 끝에도 찾아온다. 봄소식이 하루가 다르게 완연히 퍼진다. 내 맘의 봄도 저만큼 창밖 가까이 와 있다. 아침을 내달려 남원 교룡산에 다다른다. 볕이 따뜻하고 바람의 향기가 훈훈하다. 양지 바른 언덕 아래에선 새 쑥이 자란다. 길가 언덕엔 벌써 노란 볕이 건들거린다. 교룡산 생강나무에도 그새 꽃이 터진다. 기다림의 봄이 생명의 봄을 만들어낸다.
교룡산둘레길 대나무숲
광한루원 능수버들
광한루 전경
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된 고장이다. 여기저기서 모든 게 춘향을 상징한다. 판소리와 국악에도 춘향전이 자리한다. 광한루원조차 춘향의 무대 정도로 안다. 허나 이는 그저 전해지는 허구일 뿐이다. 광한루원은 조선시대의 관아원림이다. 춘향전의 무대이기보다 역사적 서사다.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지은 건축이다.
광한루원은 섬진강 지류 요천 옆에 있다. 지금은 제방이 높게 축조돼 단절돼 있다. 바로 옆에 도로가 넓게 개설돼 끊어졌다. 예전에는 천변 숲이 무성하게 조성됐다. 숲과 연결돼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했다. 1983년 '사적 제303호'로 지정됐다. 2008년에 명승 제33호로 재분류됐다. 고정원 원림 옛길 등의 가치가 뛰어나다.
광한루원은 국내 관아원림을 대표한다. 고정원 조경사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광한루의 고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누각과 함께 조성된 특별관아원림이다. 늘 2층 누각인 광한루를 중심으로 한다. 양 옆으로 완월정, 영주각, 방장정이 있다. 삼신산과 연못, 오작교가 자리를 잡는다.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관, 월매집도 있다.
광한루원은 정유재란 때 누각이 소실됐다. 1639년 남원부사 신감에 의해 복원됐다.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의 중수가 이뤄졌다. 공간의 구성이 바뀌고 시설까지 추가됐다. 젤 큰 변화는 춘향전에 의한 상징성이다. 춘향전 관련 춘향사는 1931년 지어졌다. 현재 '만고열녀춘향사' 현판이 걸려 있다. 김은호 작의 춘향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광한루원의 젤 중요한 가치는 원림이다. 조선시대의 관아원림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원을 찾는 상당수가 잘 모른다. 조선시대 대표 고정원이라는 걸 모른다. 그저 춘향전의 무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관아원림 특성이 잘 드러나게 해야 한다. 누원에 원림시설이 잘 자리 잡아야 한다. 누원의 올바른 정체성 전달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