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터질 것이 터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극단적인 정책 중 하나인 교육시스템이 향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사시 부활 △정시 확대 △공정 채용 등을 공약하고 나서면서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시 폐지, 수시확대, 자사고 폐지 등을 주장했던 여권 주류를 비롯해 전국 17개 교육감들은 침묵하고 있다. 만약 야당 후보가 이 공약을 제시했다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수 있었던 사안이다.
◇사시부활·정시확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5년 단위로만 변화를 줄 수 있는 교육정책을 대거 수정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사법시험 폐지다. 또 대입 시스템도 과거 학력고사에서 수시제도로 바꿨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정치인은 바로 이해찬 전 국무총리였다.
이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정책에 상당한 관심을 쏟았고, 큰 변화를 도모했다.
이른바 '기회의 사다리'를 폐지했다. 독학을 통해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대신 2009년 도입된 로스쿨은 4년제 졸업 후 법학적성시험(LEET)을 통과한 뒤 3년 과정을 이수하면 변호사자격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사법시험은 지난 2017년 최종 폐지됐다. 많은 사시준비생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 후 그해 12월 31일을 끝으로 사법시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문 대통령은 또 대입시스템과 관련해서도 수시 80%와 정시 20%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가 임기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정시 소폭 확대를 추진했다. 그러면서 전국의 자사고 폐지에 나섰다. 교육부가 중심이 된 자사고 폐지 정책은 법원의 제동으로 단 1곳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자사고·영재고·특목고 출신들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독점은 더욱 심화됐다. 비수도권 지역의 명문대 진학률은 대거 하락했고,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와 관련된 각종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가 사시부활 등의 공약을 선택한 것은 '2030 청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 후보에 비해 다소 부족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물론, 이 후보는 지난 5년 전 대선 때에도 '사시 존치'를 주장했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 후보의 이번 교육관련 공약은 남은 선거운동 기간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3대에 걸친 '보편적 교육' 기조가 다시 '수월성 교육'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들 침묵
교육정책은 학부모와 청소년은 물론 가족 구성원까지 따지면 가장 예민하고 첨예한 갈등을 빚을 수 있는 사안이다. 당장 오는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소위 상위 10%가 아닌 중하위 90%의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여권 내 정책 혼선은 유권자들에게 '수권(授權)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권은 침묵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총괄했던 이해찬 전 대표 역시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중 소위 진보성향이라고 불리는 교육감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대통령 중심제 국가로 국가정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같은 당에서 공론화된 내용이 공약에 반영돼야 한다. 이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찬가지다.
이 후보의 이번 공약은 지난 수년 간 전국에서 단 2곳만 없는 자사고를 설립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시종 충북지사의 교육에 대한 진정성이 상당 부분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교육시스템과 관련된 여권 내 찬반은 3월 대선이 끝날 때까지 조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서울 / 김동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