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醬) 유네스코 등록 그림자 홍보 주역

충북의 명인(名人)·명장(名匠)을 찾아서④
대한민국 한식포럼 선정 한식명장 박해순 씨
두리두리영농조합 대표 맡아 독일작가 초청
일본 '미소' 다룬 책자에 '한국 된장' 소개
어머니의 상황버섯 된장 담그는 법 전수
'심순섭 할머니된장'으로 유명세
'박해순 재래된장'·'심할머니 된장' 최근 추가
블루베리·된장 분말로 만든 '된장차'도 판매

2024.12.26 18:02:22

대한민국 한식포럼이 선정한 충북의 한식 명장인 박해순 두리두리영농조합 대표가 최근 한국의 장(醬)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목록에 등재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김용수기자
[충북일보] 최근 한국의 장(醬)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등재되면서 대한민국 한식포럼이 선정한 충북의 한식명장 박해순(64)씨가 주목받고 있다.

박씨는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에서 '심순섭 할머니된장'을 생산·판매하는 두리두리 영농조합법인 대표다. 故심순섭 할머니는 박 대표의 친정어머니다. 박 대표는 상황버섯 달인 물로 된장을 담근다. 80년 전통의 친정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한민국 한식포럼은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승인을 받은 사단법인이다. 한국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그림자 홍보활동을 펼친 민간단체다. 국내외에서 한식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2013년부터 해마다 외교사절을 초청해 한국식문화세계화대축제를 개최한다. 법적으로 인정받는 '한식의 날' 제정을 위해서도 적극 나선다. 박 대표는 숟가락과 젓가락 모양을 본뜬 9월 11일을 한식의 날로 제정할 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한식포럼 충청연합회장 겸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다. 2022년 2월 한식포럼의 전통장 부문 '한식명장'으로 뽑혔다.

한식명장 박해순대표- 두리두리영농조합 전경.

ⓒ김용수기자
박해순 대표는 '한식의 세계화'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자신이 직접 담근 된장을 세계시장에 내놓기 위해 중국의 유기농인증을 획득했다. 2013년 세계유기농업학회와 독일BCS로부터 유기농된장·간장 인증까지 받았다.

2016년 독일세계유기농박람회에서 세계 음식문화를 다루는 독일의 유명작가 클라우디아 찰텐바흐(Claudia Zaltenbach)씨를 만났다. 독일작가는 한국전통 된장과 비슷한 일본의 '미소(miso)'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박 대표는 당시 한국된장 홍보용으로 가지고 갔던 가마솥과 굴뚝, 메주 모형 등 소품을 활용해 일본 '미소'와 다른 한국의 장 담그기 과정을 독일작가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박 대표는 2017년 클라우디아 씨를 청주로 초청했다. 독일작가는 박 대표의 안내로 전국의 한식 맛집을 3박4일 동안 탐방했다. 일본의 미소문화를 소개하는 책에 한국 맛집 탐방기를 실었다. 박 대표의 된장도 보은 속리산 법주사 사진과 함께 여러 쪽에 걸쳐 소개됐다. 독일작가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 2018년 초 이 책을 출간했다. 한국요리를 다룬 책이 세계적으로 매진되며 화제가 됐던 시기다. 박 대표의 한국 전통된장 이야기가 실린 독일작가의 책 '미소'도 큰 인기를 끌었다. 독일작가는 같은 해 2월 독일세계유기농박람회에 참가한 박 대표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박 대표는 한국 전통된장이 일본 '미소'문화를 다루는 책에 실린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한국의 된장을 전 세계에 홍보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박해순 대표는 지난 4일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한국의 된장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열정을 쏟았던 지난날 자신의 활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번 한국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등재과정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이뤄낸 것처럼 기뻤다.

박해순 대표의 작업장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야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두리두리영농조합 앞마당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500여개의 옹기항아리가 정겹다. 따스한 햇볕아래 신선한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항아리 속 된장이 익어간다.

대한민국 한식포럼이 선정한 충북의 한식 명장인 박해순 두리두리영농조합 대표가 최근 한국의 장(醬)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목록에 등재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김용수기자
박 대표는 어려서부터 친정어머니 어깨너머로 된장 담그는 법을 배웠다. 박 대표의 고향은 청주시 서원구 장성동(옛 청원군 남이면 장성리)이다. 박 대표는 교육열이 남달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청주 남성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박 대표는 큰오빠의 영향을 받아 청주에 정착했다. 큰오빠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1985년쯤 청주로 내려왔다. 지금의 영농조합 근처 골프장 부지에서 한우를 키웠다. 친정 부모도 서울 방배동 집을 정리하고 1990년대 초 큰아들을 따라 귀촌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생활할 때처럼 이곳에서도 된장을 담갔다. 그리고 자식들은 물론 아들·딸의 친구, 이웃들에게 담근 된장을 나눠줬다. 맛좋은 된장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졌다. 된장을 담가달라는 부탁이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어머니의 된장 담그는 분량은 점점 늘어났다. 박 대표는 매주 토요일 친정을 찾아 어머니가 된장을 담그는데 힘을 보탰다.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장 담그기 비법과 마음가짐을 한 가지씩 알려줬다. 박 대표는 그때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수첩에 적어뒀다. 그렇게 외할머니-친정어머니의 계보를 이었다.

박 대표의 농촌생활 패턴은 2006년부터 바뀌었다. 주말마다 청주로 내려오던 박 대표는 어머니의 장 담그는 분량이 많아지자 아예 어머니 곁에 눌러 앉았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집에는 주말에만 올라갔다. 남편(최갑주·68·건설업)과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던 중 큰오빠가 2007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탁구국가대표를 지낸 작은오빠(박상순)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겠다며 2008년 귀촌했다. 이듬해 작은 오빠를 포함한 이사 6명과 조합원 50명으로 두리두리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된장 시판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심순섭 할머니된장' 상표로 출시했다. 요즘 백화점엔 '박해순 재래된장'으로 출품한다. 최근에 '심할머니 된장'을 추가했다. 제품은 모두 같은 것이다. 블루베리와 유기농 된장을 분말로 만든 '된장차'도 조금씩 판매한다.

박 대표는 충북지역에서 생산된 국산 콩만 엄선해 메주를 쑨다. 메주를 쑬 땐 가마솥에 콩과 씨 된장을 넣고 삶는다. 메주를 볏짚 위에 놓고 띄운다. 씨간장은 된장 가르기를 하고 치댈 때 들어간다. 3년에 한번 겹장도 한다. 모두 전통방식이다. 장은 오래 묵어야 깊은 맛을 낸다. 그래서 박 대표는 5년 이상 묵은 된장만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 이종억 논설위원

취재후기

박해순 대표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참 곱다'라는 느낌이 든다. 마음씨에서도 인정이 묻어난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된장을 담근다. 소비자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담는다. 친정어머니를 닮았다. 친정어머니는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했다. 평생을 베풀며 살았다.

박 대표는 음력 12월에 메주를 쒀서 음력 3월에 장을 담근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내년 4월의 장 담그기 체험과 경로잔치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다.

박해순 대표는 된장사업을 배경으로 '농촌의 도시화'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두리두리영농조합과 태양광발전소 건립에 이어 폐교를 활용한 장 담그기 체험장 겸 다목적교육관 설립을 구상 중이다. 농촌주민들도 생활비 걱정 없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마을조성이 목표다. 소멸위기에 처해있는 지역을 살리려면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야한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다.

박 대표는 친정어머니가 물려준 '이웃과 나눔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된장사업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돈에 욕심을 내기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소중하게 여겼다. 자식들에게 '더하기보다 나누기'를 먼저 가르쳤다.

박 대표는 마을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어머니의 된장 담그는 비법을 이어받아 2009년 4천290㎡(1천300평)규모의 두리두리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조합이름에는 마을주민들이 두루두루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먼저 주민들이 재배한 콩을 모두 사들여 장을 담갔다. 미원면 주민들을 중심으로 콩 작목반도 만들었다. 지금은 충북도내 전체에서 생산된 콩만 엄선해 사들인다.

2019년엔 농촌주민들이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을주민들과 함께 66만㎡부지에 충북 최대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세웠다.

된장 담그기 체험을 연결고리로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폐교를 활용한 복합교육관도 만들 계획이다. 정규교육과정에서 다루지 못하는 아이들의 창의성이나 자율성, 자립심을 키워주고 싶다.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세워 농촌 어르신들에게 인성교육을 맡기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한식체험이라든가 된장 담그기 체험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기는 어렵다. 그는 몇 해 전부터 폐교된 미원 용곡초등학교에 마을복합문화관을 만들려고 주민들의 동의까지 받았다. 학교를 폐교로 방치하는 것보다 된장 담그기 체험 등 여러 가지 교육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교육청에 제안했다. 하지만 재산권문제에 가로막혀 논의가 중단됐다. 박 대표는 충북도교육청에서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요즘 박해순 대표에게 걱정 하나가 더 생겼다. 전통된장 담그는 방법을 전수받으려는 후계자를 찾기 쉽지 않다. 큰딸에게 물려주려고 설득도 해보았다. 하지만 큰딸은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탈북민과 다문화 가정에 전수시키려 한다. 전통된장 사업은 큰 수익을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힘들다. 한국의 된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등재됐다고 기뻐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서둘러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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