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2일 대통령 비서실 시무식에서 거론한 '파부침주(破釜沈舟)'가 적어도 70%의 국민에게 '멘붕(멘탈붕괴)'을 안겨줬다.
'파부침주'는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의미한다.
김 실장이 '파부침주'를 거론하자 대다수 언론과 국민들은 대통령으로부터 '시그널'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선택
'파부침주'는 2200년 전 초나라 장수 항우가 진나라 군대를 치러 갈 당시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항우가 진나라 군대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면서 부하들에게 사흘치 식량만 챙기고 솥을 모두 깨뜨리라고 명령했다.
항우는 솥이 없어야 가볍게 이동한 후 적을 물리칠 수 있으며, 이긴 뒤 진나라 솥으로 밥을 해먹으면 된다고 말하고, 부대가 장강을 건너자 타고 온 배도 모두 물에 빠뜨렸다.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파부침주'는 적을 향한 결의에 해당된다. 적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한 장졸(將卒)의 각오로 해석된다.
임진왜란 당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고 말한 이순신 장군과 임진년(1592년) 5월 왜적이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오자 신립 장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펼친 사례와 비슷한 내용이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군사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을 때 가능한 주문이다. 지난해 말 청와대에서 빚어진 '문건파동'은 적과의 대결을 앞둔 장수의 '파부침주' 대상이 아니다.
내부의 권력다툼을 지혜롭게 봉합하지 못한 패장이 꺼낼 사자성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록위마'와 '정본청원'
교수신문이 2014년을 규정한 '지록위마(指鹿爲馬)'와 올해의 희망사항을 담은 '정본청원(正本淸源)'이 되레 국민의 마음을 파고 들고 있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의미다. 즉 거짓된 행동으로 윗사람을 농락해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청와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됐는데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초동대처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4월 1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교수신문이 올해 사자성어로 꼽은 '정본청원'은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다.
'정본청원' 다음으로 꼽힌 '회천재조(回天再造)' 역시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세번째로 제시된 '거직조왕(擧直錯枉)'도 곧은 사람을 기용하면 굽은 사람을 곧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올해 청와대에 필요한 사자성어는 '파부침주'가 아니라, '정본청원'과 '회천개조', '거직조왕' 등이다.
◇대언론 소송부터 거둬라
청와대는 그동안 언론의 보도에 대해 소송으로 맞섰다. 박 대통령 집권 2년동안 무려 13건의 소송이 빚어졌다. 그 중심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었다.
언론의 보도를 소송으로 막는 청와대는 비정상이다. 소송에 앞서, 언론의 보도배경과 앞뒤 사실관계 등을 따져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언론의 정상적인 취재 지시까지 소송의 대상으로 삼았다. 데스크가 일선 기자에게 지시한 취재아이템을 문제삼아 송사(訟事)를 벌였다.
보수 언론에 대해 큰 반감을 보였던 노무현 정부 역시 다양한 형태의 대언론 소송을 남발하다가 사상 최악의 지지율에 시달렸다.
그런데 지금의 언론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의 청와대를 비판하고 있다.
김 실장은 당장 대언론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 구성원 간 갈등과 반목에서 비롯된 '문건파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 수사에서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의 자작극으로 결론이 나와도 국민들은 쉽게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인 집권 3년차를 위해 김 실장과 문고리 3인방은 대통령의 의중과 상관없이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
서울 / 김동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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