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상처를 만지다

2016.01.07 16:59:54

류정환의 시는 교복단추를 꼭꼭 채운 학생처럼 단정하다. 과장하거나 엄살을 떠는 일도 없이 느낌과 생각을 정갈하게 버무려서 최소한의 단어로 표현한다. 언뜻 보기에는 밋밋해 보이지만, 자꾸 읽을수록 시적 공간에 숨어 있는 활자들이 아우성 치며 튀어나오는데 그게 류정환 시의 매력이다. 이 시도 마찬가지다.

냉해를 입은 군자란 한 잎 끝을 보고 화자는 잠시 갈등한다. 보기에 좋지 않으니 밑둥을 잘라버릴까 하다가 흉터도 제 삶이겠지 하고 마음을 바꿔 한 번 더 한 번 더 만져주기로 하였다는 것인데. 이 심리적 흐름이 참 깨끗하고 자연스럽다. 흉터에 응어리진 군자란과 이를 연민하는 화자의 감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질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반복해서 만져준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독자의 몫이다. 사건의 발단과 연결시키면 봄인 줄 알고 밖에 내놓은 잘못에서부터 말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흉터를 갖기까지 숱한 아픔을 겪어온 군자란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반복될 터이다. 그리고 타자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으로 변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것이다.

만약 위로와 격려의 말을 시인이 써 놓았다면 그건 시가 아니가 산문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에 이런 비시(非詩)들이 난무한다. 할 소리 다하며 행 가름만 해놓고 시인 줄 착각하는 시인들이 너무도 많다. 이처럼 독자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시를 보고 환호하는 사람도 많다. 시든 무엇이든 아무튼 다변(多辯)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 권희돈 시인

상처를 만지다 / 류정환(1965 - )

입춘 지나 경칩이면 봄 아니냐고
밖에 내놓은 군자란이 밤새 냉해冷害를 입어
한 잎 끝이 짓무르더니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마르고 부서졌다.

매끈하던 잎에 상처가 생겨
흉한 것을 며칠 들여보다가
아예 잎 밑동을 잘라버릴까
가위를 들었다 놓기를 거듭하다가

그냥 두기로 하였다.
얼룩진 상처도 제 얼굴이려니
감출 수 없어서 눈길을 붙드는
흉터도 제 삶이려니 싶어
성급함을 자책하는 내 상심傷心이
살을 도려내는 아픔보다 더하랴 싶어

그냥 두고 한 번 더,
한 번 더 만져주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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