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사랑의 방정식

2024.05.08 16:56:49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숱한 인연을 맺고 산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억만 겁의 인연으로 이루어진다고 했거늘 부부의 연은 얼마나 큰 인연의 끈으로 만난 것이랴. 긴 세월 같이하는 부부의 인연 속에서 한두 번씩 겪는 갈등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부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아침 출근길에 아내가 "퇴근하면서 여동생에게 들렀다 올게요. 조금 늦어요"라며 한마디 툭 내뱉는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언제부터인지 아내는 일상이 일방통행이다. 그런 혼자만의 일방통행에 난 아무런 대꾸도 않는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 서운해할 것이라 묵묵부답으로 나의 불편한 마음을 참는다. 아내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부터 생기가 넘친다.

아내가 늦는다고 해 퇴근길에 옛 동료에게 막걸리 한잔 나누자고 청했다. 자동차로 둘이서 술집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약속이 취소돼 일찍 온다는 전화일까? 머뭇거리며 받은 전화기 저편에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차에서 연기가 나요. 카센터에 맡겼는데 차가 없으니 데리러 와 주세요" 이번에도 브레이크 없는 급발진이다. 벌컥 내뱉을 뻔한 마음의 소리를 부여잡느라 잠시 침묵했지만, 한편으론 아내의 상황이 걱정스러웠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내며 얼른 가보라고 눈짓으로 말한다. 미안한 마음에 머뭇거리는 순간 그는 문을 열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퇴근길의 혼잡함을 뚫고 1시간 만에 도착한 그곳에는 아내가 서 있다. 아내 때문에 퇴근 못한 나이 지긋하신 카센터 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1시간여를 도로변에 서서 나를 기다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단다. 카센터 주인은 평소 브레이크 관리가 되지 않아 생긴 부주의로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하셨다. 한 시간 전 아내의 다급한 호출에 잠시나마 머뭇거렸던 일들이 떠올라 괜스레 낯이 뜨거워졌다.

긴박했던 순간을 뒤로 하고 아내를 태우고 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조금 전 상황에 대해 길게 이야기한다. 나는 앞서의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간 동료의 뒷모습이 밟혀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였다. 듣는 둥 마는 둥 앞만 쳐다보며 운전하고 있는데, 언제 준비했는지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어 운전하는 내 입에 연신 밀어 넣는다. 한 개 두 개 먹다 보니 배가 불러와 그만 됐다고 했지만 그래도 계속 입으로 김밥을 넣어준다. 급기야 됐다고 큰소리를 내고서야 아내의 김밥 먹이기는 끝이 났다. 멀리서 한달음에 자기를 태우러 온 남편이 너무 고마워 뭐든 해 주고 싶은 심정이란다.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려 괜한 얼굴을 손으로 쓱 문지르며 부끄러운 마음을 감췄다.

결혼 생활 동안 가끔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살아가고 있다. 신혼 초의 일이다. 1년을 마감하면서 연말에 가계부를 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 순간 아내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낯선 사람인 양 돌변했다. "가계부를 보자고 하는 건 나를 믿지 못하는 거다"라며 정색을 하는 바람에 그날 가계부를 끝내 보지 못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가계부 얘기는 나와 아내 사이에 금기어가 됐다.

작년 추석 때 일이다. 시골에 가거든 하룻밤만 자고 추석 당일에 오자고 아내가 넌지시 이야기한다. 지금까지는 명절 때마다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고, 그때마다 힘든 여정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즈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40여 일이 지난 시점이라 아버지를 두고 일찍 오기엔 마음이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음에도 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번 추석은 휴가라 생각하고 당신은 친정에 가서 보내" 선심 쓰듯 말을 던지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이 지난 뒤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살며시 방에서 나와 둘러보니 거실의 불이 꺼진 채 어둠 속에서 아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다툼은 누군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 금세 풀어졌다. 마주 앉아 소주 한잔하고 나면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은 저만치 날아가 버리고 없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 방정식이 있을 것이다. 사랑이 참이 되게 하는 미지수X의 값은 사람마다 다른 미지수 값을 가지고 있으리라.

우리 부부의 사랑 방정식의 미지수X는 무엇일까? 소통과 화해이다. 둘은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함께할 때 제 기능을 완전히 뽐내게 된다. 그래서 둘은 필요충분조건으로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 작은 갈등이나 마음의 틈새가 생길 때 마주 앉아 터놓고 대화하면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사랑의 방정식에서 미지수X를 소통과 화해를 정답으로 하고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살아가야겠다.

홍순길

-성균관대학교 졸업
-전)LG 화학근무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충북대 수필문학상 수상
-공저: '노을빛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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