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아버지의 지갑

2020.07.30 15:56:25

며칠 전 41번 째 아버지 제사를 모셨다. 어머니와 6남매 자손들이 모두 모여 자연스레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기리고 회고했다. 담소 도중 어머니께서는 이제 장남이 가지고 있으라며 아버지 유품을 나에게 내미신다. 손바닥 반 만 한 크기의 낡고 얇은 가죽지갑이다. 지갑을 펼쳐보니 아버지의 주민등록증과 몇 조각의 메모지만 달랑 있다. 파란 잉크에 국한문으로 쓰여진 메모지는 한 눈에도 달필임이 느껴진다. 빛이 바랜 글씨를 더듬더듬 읽어보니 아버지의 출생 등 간단한 이력과 '아부지 있을 곳'이라고 쓴 밑에는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 올 때 찾아 올 세 곳이 적혀있다. 1, 2, 3번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소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기록했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었던 6·25 동란 때,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월남시키시며 써주시고 아버지가 평생 품에 간직했던 지갑이다.

고향이 함경북도 경원이신 아버지는 함경남도 성진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친구들이 하나 둘 인민군으로 차출되고 아버지도 언제 인민군으로 끌려갈지 모를 즈음 당시 교사이시던 할아버지께서 장남인 아버지께 월남을 종용하셨단다. 겨우 17살 중학생인 아들을 홀로 남쪽으로 피난시키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옆에서 지켜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또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는 피난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어릴 적 모습 등을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진다. 부모자식간의 생이별보다 자유가 먼저였을까. 의용군으로 죽음의 전쟁터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미지의 피난길이 더 낫다고 생각하셨을까.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는 믿음이 강했던 걸까 아마도 하루빨리 전쟁이 종료되고 할아버지께서 메모지에 써주신 그 주소에서 재회하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눈물의 이별을 하였으리라. 빛바랜 낡은 지갑과 메모지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단신으로 1·4후퇴 때 함경남도 흥남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오셨다. 그 추운 겨울철 누구 하나 의지 할 데 없이 추위에 움츠리고 불안에 떨며 망망대해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피난민 수용소를 거치고 휴전이 될 무렵에는 고향이 가까운 북쪽으로 올라가려고 무작정 경부선 화물열차에 숨어들어 몸을 실었단다. 열차 지붕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밧줄로 몸을 동여매고 북쪽으로 향하는데, 화물열차는 대전에서 멈춰 섰다. 할 수 없이 구걸하고 때론 훔쳐 먹으며 걸어서 북쪽으로 가던 중 굶주림에 지쳐 청주 북쪽의 어느 도로에서 쓰러지셨다.

마침 지나던 사람이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 밥과 잠자리를 주었는데, 비록 허름한 창고에서 기거하며 꽁보리밥으로 연명을 했지만 피난 후 처음으로 발을 뻗고 잘 수 있었단다. 자연스레 허드레 일로 보답을 하게 되고 결국 눌러앉아 꼴머슴이 되었다. 농사 일이 서툰 아버지는 괄시와 면박을 받으면서 일을 익혔고, 새경도 없는 머슴 생활을 4년이나 하였다. 도로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해준 은공도 있고, 통일이 돼서 북한 고향땅을 올라갈 때 노잣돈을 듬뿍 준다는 주인의 말을 믿었단다. 허나 꼴머슴을 벗어나 상머슴의 일을 해도 새경은 없고, 통일의 기미는 보이지 않을 때 중매가 들어왔다. 남편은 돌아가시고, 장모되실 분 혼자서 딸 넷과 낳은 지 채 1년도 안된 아들과 사는 가난한 집안이었다. 외로움이 뼈에 사무치던 아버지는 데릴사위로 처가식구까지 떠맡아 돌봐야 한다는 생각보다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어머니께 누누이 말씀하셨단다. 어쩌면 그 당시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다시는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보물지도처럼 평생 품에 간직한 작은 지갑은 아버지한테 무슨 의미였을까. 통일이 되는 날, 그 지갑 속 주소를 찾아 부모형제를 만난다는 희망으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딘 힘이었을까. 외롭고 힘들 때 마다 지갑을 꺼내들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너무나도 보고 싶은 북녘 땅 부모님의 체취였을까 이제 아버지는 고향과 부모형제가 사는 고향 땅을 영영 찾지 못하시고 생을 마감하셨다. 그 보물지도가 어머니의 손을 거쳐 지금 나에게 와 있다. 가죽은 낡고 해어지고, 메모지에 쓰여진 글씨도 많이 퇴색되었다. 아버지의 혈육이 살고 계실 장소는 아무리 애를 써도 갈 수 없는 북녘 땅이다. 아버지 가죽지갑 속 메모지는 점점 빛이 바래지고 있다. 더 빛이 바래지기 전에 아버지가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의 고향을 자식인 나라도 찾아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신성용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푸른솔문학 수필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충북도 정년퇴직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