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내안의 부지깽이

2022.06.20 16:25:39

고무줄을 팽팽히 잡아당긴 듯한 긴장감이 요 며칠 새 떠나지 않는다.

이틀 간격으로 두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전화 때문이다. 언어 특수 재능아로 선발됐다는 큰애의 소식은 마음이 환해지는 기쁨을 주었지만, 둘째 때문에 받은 전화는 상담을 요하는 것이었다. 반장을 하면서 아이들이 무서워하고 지적사항도 고쳐지지 않는데다 학습도 부진하다는 것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과잉 행동장애나 충동 장애로까지 염두에 두고 계신 듯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너 닮은 자식 낳아서 길러봐라"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가슴을 후려친다. 그리고는 등줄기 한 대 오지게 맞은 듯 나도 모르게 손이 등 뒤로 간다.

부지깽이로 호되게 맞았던 일이 생긴 건 중학교 입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는 속리산 관광지에 사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차비를 아끼려고 시오리 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 우리와는 씀씀이가 너무 달랐다. 그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늘 돈이 필요했고 가난하고 농사일이 많은 집이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술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가 송아지 판 돈을 안방 농 서랍 속에 넣는 것을 보았다. 침을 삼키며 지나치던 학교 앞의 간식거리와 친구들 앞에서 기를 펼 생각에 기어코 종이돈 한 장을 빼 들고 말았다.

며칠을 써도 남았던 돈이 발각 났는데, 남동생에게 인심 쓰느라 마을 어귀 구판장에서 주점부리를 몇 번 사주었더니 끝내 고자질을 했던 것이다. 내심 아버지의 술값 탓이라 여기셨던 어머니는 부엌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부지깽이로 내 등을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다. 나는 무조건 뒷산으로 도망가 금잔디 깔린 낮은 산소에 엎드려 울었다. 처음엔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아서 밉고, 가난하고 농사일이 많은 집이 싫어서, 나중엔 모질게 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 때문에 다시금 쪼그리고 앉아서 울었다.

산소에 내려앉은 저녁 안개가 무서워 슬금슬금 내려와 부엌 뒷문을 여니 아궁이 불 때문인지 발개진 어머니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때리면 맞으리라는 생각으로 다가 앉으니 부지깽이 든 소맷귀가 젖어 있었다.

그동안 농사일에 치이며 4남매를 키우고 살아오면서 얼마나 적시고 말렸을까. 그을음 낀 까만 아궁이 불길 속에 부지깽이 휘둘러 긴 한숨을 불꽃처럼 날려 보내기도 하고 흥얼대는 노랫가락에 탁탁 치며 장단 맞춤은 힘을 얻는 신앙 같은 것이었나 보다. 쭈뼛거리고 있자니 "너 같은 자식 낳아서 길러봐라" 하는 어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부지깽이 불붙었다. 물에 담가야겠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부엌 한쪽에 꼿꼿이 세워져 있던 끝이 까만 부지깽이가 단순하게 아궁이 속 불길만 다독였던 것이 아님을 자식을 키우며 알아 간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올 때가 됐는데 시간이 왜 이리 더디 가는지 부지깽이라도 있으면 어머니처럼 마당에 깔린 멍석을 턱턱 두들기거나, 담장 위에 앉은 닭이라도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다. 적극적이고 호기심 많은 아이로 자라는 것이 내심 다행이다 싶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병명을 붙인다. 집중력 강화제라는 치료제가 아이들을 그리 보고 있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약은 아닐는지….

살아가다 보면 마음의 집중을 하지 못해 상처받는 일이 다반사다. 기다리는 일도 집중을 요하는 일이요. 타인이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그러하고 뜻을 이루고자 할 때도 필요하다. 어쩌다 한번 휘두르던 어머니의 부지깽이가 그 약이 아니었나 싶다.

열 손가락 깨물어 더 아픈 손가락은 사랑과 관심이 좀 더 필요한 자식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머니가 부엌 한쪽에 세워두신 부지깽이처럼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아이를 기다려 주리라.

이현자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료

푸른솔문학 신인상. 카페문학상 수상.

새롬내과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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