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나이테가 생겨나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듯이 어느덧 팔순을 몇해 앞두고 있다.
지나온 세월에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가족이 있다. 자식이자, 아내로 세 자녀의 엄마로 살아온 지난 시간이 힘들고 고단했지만 흐뭇하고 보람도 있었다. 내 삶의 역사를 같이 써내려온 가족이 있었기에 그들이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여러 가지 호칭과 직분으로 살아왔지만, 그중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이 제일 소중 나날로 매우 힘든 시간이기도 하였다.
어느덧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부모의 숙제를 끝낸 후련함도 잠시였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역경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자식들의 미숙한 판단으로 긴 세월 뼈아픈 고통을 안고 살아가면서 인내하며 자성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나에게 닥친 시련을 받아드려 평정심을 얻기까지 참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낸 듯하다.
꽃길만 걸으며 행복하길 기도하였다. 자식이 긴 세월을 자책하며 괴로움을 견디며 살아갈 때 내 삶도 흔들리고 무너졌다. 실타래 같이 얽혀버린 자녀의 인생을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고난은 자식에게 닥친 시련이었다.
자녀의 결혼을 통해 새 가족을 맞이하는 과정에는 크나큰 축복도 있지만 숨은 갈등도 많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녀가 융합하여 다른 생활방식에 적응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각기 다른 매력에 끌려서 사랑하고 적응해가는 과정이 결혼생활인 듯하다.
인생의 결합은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연리(連理)처럼 서로 이어지는 연리지(連理枝)와 같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결혼생활이 연리지처럼 한 몸을 이루듯 가정을 이루었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감이 결혼이다.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배우자 등 서로에게 주는 상처가 아물고 회복되기까지는 길고 긴 세월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부부란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 마음을 나누는 노력,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인내함이다. 닫힌 마음이 열리고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 묵묵히 서로가 노력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릴 때 마음이 서서히 움직인다. 인격적인 성숙이란 시련의 아픔을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면서 깨닫게 된다. 상대방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고, 이해하면서 배려함이 부부다. 인연은 선택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과 경험들이 쌓여 성숙함이 부끄럽지 않음이 부부의 삶이다.
산업과 과학의 발전 속에 빠르게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는 게 현재의 세상이다. 정작 눈부신 성장과 발전 뒤에는 빠른 실적주의 성과주의에 빠져 남들보다 늦 되거나 느려지면 무능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것 같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인생은 심신(心身)이 망가지고 난 후에 멈춘다.
나의 자녀들아! 미리 멈추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멈추면 지나치고 못 봤던 것을 보게 된다.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면 알게 된다.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찾아라. 삶이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소박함에서 행복하단다. 요즘 사회는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워라벨,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요시 하는 삶이 다가온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으면 장애물에 부딪쳐 사고를 내듯이 인생의 고난은 삶의 브레이크이다. 멈춰서 삶을 돌아보라는 경고다. 느리게 가면서 인생의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게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나무 의사 우종영 저자는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모두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드리는 그 의연함에서 삶의 가치를 배운다고" 하였다.
부부의 삶이란, 한결같은 의연한 나무처럼 힘들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서로가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바란다.
푸른 오월의 자연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