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흐린 날씨다.
농사 가뭄이 걱정이라는데 다행히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비를 부르는 아침바람이 반갑고 상쾌하다.
어머니의 아침운동을 위해 무심천을 함께 걷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과 개나리꽃이 밤낮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봄을 물들게 하더니, 벌써 잎은 한여름으로 무성하다.
어머니는 걸음걸음마다 올해의 계절 모습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개나리 꽃나무 아래 풀숲에 숨어 핀 이름 모를 조그만 하얀 꽃이 예쁘다며 가리킨다. 푸른 잡초 풀 속에서 청초하고 예쁘게 핀 흰 꽃이다. 다행히 아주 작은 꽃이 나보다도 어머니를 먼저 반긴 것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이름 모를 하얀 꽃을 바라보며 얼굴표정으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
5월의 무심천에는 6∼70년이 훌쩍 넘은 고목의 벚꽃나무들이 나지막하게 푸른 숲 터널을 이뤘다. 봄 벚꽃 못지않게 초여름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구십을 넘긴 고령의 세월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어머니는 이곳에서 살면서 무심천과 함께해 살아오신 지도 벌써 60년이 되었다.
무심천 벚꽃나무 아래 서 있는 백발의 어머니 뒷모습을 보니, 어머니도 무심천의 예쁜 인생의 흰 꽃이다.
46년 전 4월 외아들인 내가 군인 입대로 논산훈련소로 떠나가던 날, 무심천 벚꽃 아래서 어머니와 작별했었다. 그때 45살의 어머니는 무심천 징검다리를 건너 사직동 터미널 쪽으로 가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며 손을 흔드셨다. 세월과 함께 지금은 무심천도 어머니도 나도 많이 변했지만, "어서 가라"며 밀치는 손짓을 하시던 어머니의 젊었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남다른 불행과 복잡한 가정사로 가족과 자식에 대한 집념과 애정이 강했다. 그 시절의 가난이야 누구나가 다 겪는 일이라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의 힘든 고통과 아픔에서도 지금까지 오직 우리 4남매에게 베푸신다. 어머님의 헌신적인 남다른 사랑이 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9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집을 올 때까지 두 분의 계모 밑에서 살았단다. 어릴 때부터 학교도 제대로 못 가면서 정말 동화 속 이야기 같은 혹독한 계모살이를 했단다. 시집와서 시어머니와 맏동서의 층층시하 시집살이보다도 더 힘든 어린 시절이었다고 회상할 때면 우리는 숙연해진다.
그래서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가족 사랑과 형제애를 유난히 강조해 오셨다.
아침 찬바람을 뒤에서 막아서며 꼭 잡은 어머니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소변을 보신 것이다. 어머니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항상 기저귀를 차고 계신다. 바람에 날린 흰 머리를 쓰다듬어 드리자 괜찮다는 듯이 내 손을 다시 꼭 잡으며 가자고 하신다.
어머니는 화단과 화분에 물을 준다. 내일 비가 온다고 해도 방금 막 물을 주었는데도 가끔씩 기억을 하지 못 하신다.
이제 5월이다. 5월은 녹음이 짙어가는 꽃의 달이며,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님이시기에 이번 5월에 필 꽃을 어떤 색깔로 기쁘게 하여 드릴까 고민이 된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배롱나무(목백일홍)꽃을 좋아하셨다. 올해는 배롱나무를 2그루 새로 사다가 심었더니, 벌써 새순이 예쁘게 돋아났다.
새순을 보면서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우리 4남매는 어머니가 우리 가족의 '행복 꽃'이라고 하자, 어머니는 눈웃음을 지으시며, 우리 집안의 진정한 행복 꽃은 3명의 증손자들 재롱이라며 밝게 웃으신다. 올 어버이날에는 지난해보다도 더 예쁜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