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함박꽃나무

2021.08.05 17:09:33

[충북일보]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자극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나뭇잎 사이로 수줍은 듯 환한 미소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한다. 백옥 같이 만개한 꽃에 매료되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늘어진 가지 위에 핀 꽃을 코에 살며시 대어 보니 그윽한 향기에 가슴까지 뻥 뚫린 느낌에 황홀 하다.

오육년 전 지리산 칠선 계곡을 산행하던 길에 만난 크고 하얀 꽃은 물길 따라 다소곳이 피어있다. 보면 볼수록 우아하고 아름다운데 흔하게 보는 꽃이 아니라서 몹시 궁금하고 반가웠었다.

함박꽃 나무란다. 산목련(山木蓮)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본디 나무(木)에 피는 연(蓮)꽃이라 하여 줄기는 곧게 자라고 열매는 붉은 씨앗이 두 개씩 달린단다. 막 피어오르는 꽃망울은 붓을 닮았다 하여 목필(木筆)이라 불렀고 꽃이 옥돌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여 옥수(玉樹)라고도 불렸다는데, 만개한 꽃은 꽃잎 한 조각 한 조각이 향기의 덩어리라 하여 향린(香鱗)이라 했단다. 또한 꽃의 향기가 얼마나 맑고 청아하면 난초처럼 아름다운 나무라 하여 목란(木蘭)이라 부르기도 하고, 꽃은 옥과 같고 향기는 난초처럼 그윽하다 하여 옥란(玉蘭)으로 부르기도 했단다.

산행 중에 뜻밖의 행운의 꽃을 만나 두고두고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깊은 산속에 숨어 피는 꽃으로는 향기뿐만 아니라 아름답기로는 지금까지 산속에서 보아온 꽃중에 단연 으뜸이다. 야생화인데도 정원이나 공원의 화려한 꽃들처럼 크고 아름답다. 산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이름 모를 꽃들이 반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풍겨오는 향기는 산행의 즐거움에 배가된다.

오늘처럼 산속 깊은 계곡에서 이런 함박꽃을 만나면 마음이 좋아지다가도 한편으론 애잔해 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상 밖으로 들어내지 않고 계곡물이 맑게 흐르는 깊은 계곡 저편에서 외로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는 듯하다. 순백색의 꽃잎 속 붉은 수술은 너무나 아름다워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다. 슬픈 사연을 간직한 여인의 눈동자와 같다고나 할까.

백목련이나 벚꽃처럼 잎이 피어나기 전에 한 번에 꽃만 활짝 피었다가 어느 순간 낙화하여 허망하고 쓸쓸하기 그지없어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산목련은 잎이 먼저 싹을 티우고 푸르러지면 꽃은 순차적으로 몇 송이씩 피고, 먼저 핀 꽃이 지기 전에 또 다른 몇 송이가 꽃망울을 터트린다. 하나의 나무에서 꽃망울이 생기고 만개해서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동시에 보는 꽃이 흔하지 않으리라. 만개한 꽃은 벌과 나비들에게 아낌없이 꿀과 꽃가루를 골고루 나누어주고 산들거리며 힘없이 땅으로 내려앉은 하얀 꽃잎 조차 개미나 미생물들에게 마지막까지 사랑을 베풀고 있다.

공해에 무수히 찌들고 도시 생활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보듬어 주며 위로하고 안식처를 제공하는 함박꽃이 손짓을 하는 이곳에서 하룻밤이라도 머무르고 싶다. 이러한 숲속에서는 외롭지 않으리라. 낮에는 따사로운 햇빛과 아낌없이 주는 함박꽃의 향기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뒤돌아볼 틈도 없이 숨막히듯 살아온 삶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는다. 상념(想念)에 잠기면 조용히 어둠은 찾아오고 이름 모를 풀벌레와 새들의 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오리라. 마음을 열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박꽃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달과 벗하며 별을 노래하고 싶다.

높은 산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에서 자생하는 함박꽃나무, 밭 뚝이나 야산 언저리에 서식하였다면 맑고 청아한 꽃이 피기도 전에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모두 없어졌을 텐데 무척이나 다행이다 싶다. 보통은 꽃이 화려하면 향기가 부족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꽃일수록 향기는 그윽하고 멀리 간다. 그러나 산목련의 꽃은 순백의 자태가 고결하여 화려하고 향기 또한 으뜸이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우리 인생도 산목련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가세현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상

-카페문학상 수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서예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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