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의 시는 여행자의 애상과 기억을 담고 흔들리는 몽환적 유리병 같다. 음악적 감각, 미적 자극과 울림, 시간에 대한 사유가 결합하여 아름답고 슬픈 서정의 세계를 창출한다. 그의 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 서정의 세계를 탐색하는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반서정의 감각으로 장르 미상의 예술적 미지를 탐색하는 계열이다. 전자의 세계에서는 시적 자아의 낭만적 방황과 세계를 떠도는 표류의식이 두드러진다. 광기에 가까운 낭만적 도취와 폭포처럼 쏟아지는 광휘의 수사들이 나타난다. 후자의 세계에서는 기존 예술에 대한 부정의식이 나타난다. 연극, 미술, 음악, 영화를 넘나드는 다매체 문법과 형식, 탈규범적 언어와 시간에 대한 다차원적 탐색을 통해 새롭고 낯선 시의 세계를 탐험한다.
후자의 낯선 실험을 대표하는 시집이 '기담'(2008)이라면, 전자의 낭만적 서정을 대표하는 시집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이다. 이 첫 시집은 우주의 영원성에 대한 시인 특유의 감각과 상상, 아름다운 서정의 그림들이 유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시인 특유의 방랑의 정서가 독자의 심리 저층을 건드려 근원적 향수와 애련의 감정들을 자아낸다. 특히 우주의 신비와 시간에 관한 기억들이 펼쳐질 때 정서적 울림은 깊어진다. 그의 초기 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어휘가 '우주'와 '시차'다.
우주는 그에게 아주 신비롭고 아름다운 원형적 공간이다. 실체가 포착되지 않는 바람, 악, 절대의 색(色), 빛깔, 어둠, 시간 등 신비감으로 채색되는 곳이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 열, 음악, 잠, 휘파람 등이 떠도는 곳이다. 시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억의 파편들, 잠의 부유물들, 무형의 아픔들이 떠도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주는 시인 자신의 몸이자 방이기도 하다. 그 외로운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를 쓰는 행위는 곧 자아에의 침잠이고 죽음과의 대면이고 생에 서린 무량한 고독과 사랑을 음미하는 일이다. 방에서 방을 밀고 우주로 나아간다는 시인의 상상에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인의 마음과 기억의 상흔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우주라는 방은 곧 기억의 미로고 몽상의 지도다.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둥글게 회전하면서 분산되고 확산되는 곳, 끝없이 시차가 발생하는 곳이다. 이 시차에 대한 사유를 통해 시인은 자신이 속한 현재와는 다른 시간대, 무한한 기억의 지층 속으로 음악처럼 아련히 스며들곤 한다. 시간, 기억, 이미지, 통증, 음악 등이 하나의 물결처럼 파동을 만들며 움직이고 이 미묘한 율동에 따라 현실의 문양과 색채가 낯설게 변한다. 즉 그에게 세계는 낯선 시차(視差)의 공간이고 끝없이 시차(時差)가 발행하는 틈이자 구멍이다.
시차는 주로 여행과 기억에서 발생하는데 여행은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닌 돌아오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자주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돌아왔을 때의 여진" 즉 시차에 의한 여독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차(時差)를 겪고 나면 시차(視差)가 생김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시차는 망각과 상처를 낳는 시간의 차이이자 이질적 풍경의 결합을 낳는 시각의 차이다. 그에게 세상은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을 찾아 떠나야할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이 미지의 여행에서 그는 현재의 시간에서 까마득히 먼 과거의 시간을 체험하기도 하고 까마득히 먼 미래의 죽음의 시간을 미리 체험하여 멀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 시차의 견딤을 통해 우리 또한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인간인 나는 언제나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현실은 늘 시차를 낳는 곳이고 그 불가항력이 인간인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 그런 인간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 그것이 그의 시다. 달력에 없는 시간과 지도에 없는 공간을 떠돌던 여행자의 지독한 여독, 그것이 그의 시다. 그러기에 여행 후 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아픈 일은 고독 속에서 여독을 달래며 시차의 눈을 달래는 일일 것이다.
/ 함기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