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매화의 향기

2023.03.16 15:48:14

입춘이 지나 우수다.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맨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는 매화를 화선지에 그려본다. 매향은 묵향과 어우러져 집안 가득 고요로 다가온다. .

발코니에는 매화나무 분재가 두 개가 있다. 정월이면 백 매화가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 봄의 전령사인 것이다. 한 달 동안을 그윽하고 청아한 향기가 집안 가득 고요로 찾아 든다. 백색의 매화꽃과 그 향이 봄소식을 다할 즈음 또 한그루의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린다. 꽃은 백색인데 꽃받침은 붉은색이어서 또 다른 멋을 선사한다. 밤이 깊어 달빛과 별빛만이 매화나무를 비추면 매화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해묵은 줄기에 고고한 자태의 하얀 꽃은 은은히 빛을 발하는데 낮보다 더 화사할 뿐만 아니라 은밀하면서도 요염하다. 그래서 월매(月梅)라 부르는가 보다. 누구라도 이 청아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리움이 애잔하게 밀려온다. 이년전 여름, 더위가 극심하였었다. 십수 년을 마음으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함께 했던 매화는 나의 곁을 떠났다. 온전히 나의 잘못이었다. 화분이 조금 작아 큰 화분으로 분갈이 해야지 하며 미루어 오던 차에 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몇 날 며칠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으나 소용이 없다. 슬픔으로 보낸 백매화와 같은 매화를 지난해 봄 입양을 했다. 정이 들어서 일까, 떠나 보낸 매화가 여전히 눈에 삼삼하다

선비들은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으뜸으로 여겼는데 특히 매화와 대나무를 이아(二雅)라 했으며 이아에 돌(石)을 합쳐 삼청(三淸)이라 하고 사군자에 연꽃을 더해 오우(五友)라 하여 항상 가까이 했다고 한다.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안은 화목9등 품론을 통해 매화를 1등품으로 분류하고 '매화는 높고 뛰어난 운치로 가히 취할만 하다' 고 극찬하였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그리고 '인내'이다. 매화는 청렴하고 곧은 절개로 선비와 같은 기풍이 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하여 춘고초(春告草)라는 애칭을 얻었다.

퇴계 선생이 유언으로 "매화 나무에 물을 주어라" 라고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매일생 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는 상촌 선생의 시구(詩句)는 서예인이라면 한 번쯤은 써 보았을 것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30대에 금오산에 기거, 매화를 가꾸면서 시를 쓰며 참선을 했다고 전한다. 매월당(梅月堂)이란 호도 이때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달빛이 흐르는 밤에 은은히 풍기는 매화향을 맡으며 학문을 닦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매화를 얼마나 사랑하였으면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렸다는 송나라 임포의 일화는 매화 사랑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매화나무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조선시대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화선(畵仙)다운 고결한 인품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충청북도 연풍 현감 시절,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하는데 김홍도는 그 매화가 썩 마음에 들었으나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이때 마침 어떤 사람이 그림을 청하여 그 사례로 삼천량을 주자 김홍도는 이천량으로 매화를 사고 팔백 냥으로 술 여러 말을 사다가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셨는데 그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이백 냥으로 쌀과 나무를 들였으나 겨우 하루 지낼 것 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매화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에서는 매화를 국화(國花)로 지정하고 있다. 눈 속에서도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 하였다. 얼마나 희고 고우면 '눈이 꽃과 같고 꽃이 눈과 같다'고 하였을까, 자태를 잃지 않고 피어있는 의연한 모습에서 매화의 기개를 알 것 같다.

매화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고, 사군자인 매난국죽(梅蘭菊竹)중에서도 으뜸이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이다. 추위에 잘 견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한폭의 그림에 담아서 세한삼우(歲寒三友)'송죽매'라고 하는데 나는 '매송죽'이라고 부르고 싶다.

오랜 세월 선비들과 함께해온 한국의 4대 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백양사의 '고불매', 오죽헌의 율곡매', 화엄사의 '들매'. 선암사의 '선암매'이다. 며칠 있으면 매화꽃이 피어 선비의 절개답게 고운 자태에 향기 또한 가득하리라.

매화나무의 꽃이 언제 피고 언제 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이지만, 한 번쯤은 청렴하고 곧은 절개가 있는 매화를 가까이하여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며, 향기를 느끼고, 매화를 사랑하며 꽃말처럼 고결하게 살아가고 싶다.

가세현

푸른솔문학 신인상

카페문학상 수상. 자랑스런 문인상

푸른솔 문학회 회원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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