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어머님의 기도

2021.09.23 15:52:08

탁. 탁. 탁 탁 탁.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도량찬 도량청정 무하예 삼보천룡 강차지…. 목탁소리가 고요한 산사를 울리고 있다.

그때 나는 하던 일이 잘되지 않아 일을 접고 허접한 마음 달랠 겸 가방에 조각도 몇 자루와 재료를 담아 불상을 조성하러 깊은 산사를 찾아다녔다. 나는 60~70년대는 작은 암자에서 종종 흙으로 빚은 부처(土佛)을 봉안하였다. 나는 부처를 조성할 줄 알았기에 깊은 산골 산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허허한 마음 가눌 길 없고, 가는 곳 정함 없어도 나는 걸었다. 걷고 또 걷고 인적이 없어 쥐 죽은 듯한 고요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봇물처럼 밀려오는 외로움이 번져와도 담담히 걸었다. 이렇게라도 살아야겠기에 걷고 또 걷고. 때때로 청아한 산새의 지저귐과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잔잔하여진다.

나는 어제 여기 암자에 와 쉬고 있었다.

저만큼 허리가 꺾인 늙으신 할머니가 등에 조그마한 봇짐을 지고 찾아오신다. 보살님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불공을 드려 달라고.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스님도 아닌데…. 그때 스님과 동자승은 탁발을 나가고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데, 내가 도와드리고자, "보살님, 공양을 올리시죠." 하고 스님이 하던 대로 촛불 켜고 청수 올리고 향불 붙이고 숙연한 자세로 독경을 한다.

고요한 산골 조그마한 암자에 승복도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에 스님도 아닌 내가 목탁을 치며 독경을 하고, 그 뒤에선 허름하고 늙으신 노파가 온몸으로 정성 들여 절하며 기도드린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탁 탁 탁탁탁…. 독경 소리와 서투른 목탁 소리가 법당 안의 고요를 가른다. 내 등 뒤에선 할머님이 정성을 다해 절을 하며 기도드린다. "우리 아들 며느리 잘살게 해 주십시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불 우리 아들 며느리 잘되게 해 주십시오. 나무…." 나는 예불 책 1권을 다 읽었는데 할머니의 기도는 계속된다. 예불을 멈출 수가 없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얼마나 지났을까? 예불은 끝이 났다.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고 얼굴에는 쉼 없이 땀이 흐른다. 법당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고뇌에 찬 고통의 번뇌가 어디 갔는가?

더위가 무섭게 느껴졌던 7월의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고 이 싱그러운 신록과 자연은 이리도 장엄하고 위대하다! 형언할 수 없이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 잠시 나를 잊어버렸던 무아경! 보이는 모든 것, 마음이 놓여진 어디에도 평안하고 고요하다. 잔잔하게 가득 채워진 이 황홀함이여, 모두가 아름답고 신비롭다. 온 정성 바친 어머님의 기도 덕일까? 삶의 고뇌가 어디에도 없구나! 할머니는 조용히 험한 산비탈 길을 천천히 내려가셨다.

보살님이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젊어 청상과부 되어 품을 팔아 남의 집 문간방에서 어렵게 살며 아들을 키웠다. 아들이 성장하여 성혼시켜 함께 살았다. 한데 어느 날 밤 아들 내외가 야반도주를 하였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젊은 열정을 주체 못 해 늙으신 어머니를 버리고, 야반도주라니… 휑하니 뚫려버린 마음이 허허롭고 차갑게 내려앉는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구걸을 하여 자식을 위해 부처님 전에 묵묵히 온몸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는가! 이 얼마나 성스러운가! 이 순전하고 투박한 어머님이 살아계신 부처(生佛)가 아닐는지!

요즈음 효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오래다. 동방 예의지국으로 자부하며 살아온 우리 전통의 미풍양속이 보이지 않는다. 어른이 된 내가 부끄럽다. 사는 게 힘들다고, 시간이 없다고 핑계 대며 살아왔던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며 아련한 세월 저 너머 그 할머니 생각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이완근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효동문학상,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상

대한민국 33회 서예대전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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