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등나무 정원을 쓸며

2021.10.07 14:53:19

쓱 쓱 쓱 쓱… 고요한 아침 체육 공원 등나무 쉼터 마당을 쓰는 빗자루 소리가 경쾌롭다.

쓱 쓱 쓱!

나는 몇 달 전 아파트 앞 체육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얼마 남지 않은 보랏빛 등나무 꽃이 질 무렵 시들어가는 꽃이지만 아직은 그윽한 깊은 유향(幽香)이 단아한 중년 여인의 은은하고 기품(氣品) 있는 넓은 치마폭으로 휘어 감싸 안을 것 같은 향취를 연상(聯想)하며 상념에 젖어들 때 아뿔싸, 주위는 온통 잡풀과 쓰레기 담배꽁초 그리고 개똥. 왜 이리 허접하고 황당한가?

멍하니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누구를 탓 해야 하는가! 동네 사람들은 다 무엇을 하고, 내 일이 아니니 나는 모른다. 무려 천여 세대가 사는 아파트 한 쪽 터, 온 주민이 운동하고 쉬는 쉼터 마당이… 이럴수가? 읍내 주민 센터로 민원을 낼까? 아니다, 그렇게 떠들 일도 아니다.

그래, 내가 쓸면 되지 않은가? 누가 더러운 것을 치우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내가 하자.'

나는 내수읍 내 가게에서 마당 빗자루를 샀다.

쉼터 마당을 한참 쓰는데 매일 아침마다 동쪽 언덕 산자락 숲에선 소쩍새가 울어 댄다. 솥적 솥적. 우리 조상들은 배 고프고 굶주린 설음의 한을 새 울음 소리에도 구실을 붙여 '솥적 솥적' 솥 적다, 솥 적다. 식구는 많은데 솥이 적어 밥이 없어 배가 고프다고 울어 대는 슬픈 민화(民話)로 전해질까?

오십여 평 넓은 쉼터 마당 그리고 오백여 세대가 버스를 타기위해 많이 다니는 쪽문에는 10여 개의 계단 있다. 거기도 쓸어야겠다.

이른 아침, 일터로 가는 길 깨끗이 쓸어 있으면 기분이 참 좋으리라, 그렇게 생각되어 아파트에서 내려오는 계단까지 함께 쓸었다.

온 몸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고 몸은 힘들어도 머리는 맑고 마음은 흐뭇하기 그지없다.

누구를 위한 행위인가· '남을 위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함이요, 이것이 자신을 위한 수신(修身)이 아닌가. 남을 위한 선행도 결국 자기를 위한 선(善)인 것을.

누가 이 상쾌함을, 누가 이 뿌듯함을 알겠는가· 이른 아침 이 파랑으로 꽉 채운 넉넉한 칠월의 아침을!

어떤 이는 힐끗 힐끗 쳐다본다 아마 낮 설은 모양이다. 웬 수염 달린 늙은이가 공원을 쓸고 있으니, 의아한 눈 빛이다.

뚱뚱한 아주머니가 개를 여러 마리 끌고 와 할아버지 "수고하시네요. 깨끗이 쓸어 놓으니 이제 와도 되겠네요. 전에는 개를 데리고 운동하고 싶어도 더러워서 올 수 없었는데 이제 좋네요." 한다.

깨끗하게 쓸어낸 넓은 정원이 좋은가 보다. 강아지들이 이리 저리 마구 뛰어다니고 아주머니도 환하게 활짝 웃는다.

고전(古典)에 '일일 지계는 재 어인'(一日之計 在於寅)이라는 말 즉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는 말처럼 이른 아침 땀을 내니 정신이 맑고 마음은 상쾌하고 하루의 시작이 칠월의 녹음(綠陰)처럼 싱그럽고 힘이 넘친다.

다음날 아침에 등나무 마당을 쓰는데 한 젊은이가 한참을 쉬었다 갔다, 그 젊은이가 앉았다가 떠난 자리 앞에 담배 꽁초가 일곱개나 흩어져 있다.

미안한 기색도 없이 떠났다.

삶에 무게가 그리 무거워 훠이 훠이 그렇게 불태워 연기로 내 뱉어 냈을까? 갓 쓸어낸 마당을 어질러 놓은 젊은이가 밉다기보단 측은(惻隱)한 마음이 든다.

적어도 조금은 미안해하면 안될까?

우거진 녹음으로 감싸 안은 쉼터를 깨끗이 쓸고 의자에 걸터 앉으니 아늑하고 상큼하다, 내가 기분이 좋으니 다른 사람도 기분이 좋으리라, 조금 수고하면 이렇게 깨끗하여 찾는 이 모두가 좋은 것을!

여러사람이 쉬고 마음 추스리는 이곳을 앞으로도 계속 쓸어야겠다.

작은 내 행동이 헛된 수고가 아니고 힘든 이의 조금의 안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쓱 쓱 쓱 쓱, 빗자루 소리 아침을 깨우면 찬란한 햇살이 칠월을 채운다.

이완근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효동문학상 수상.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상.

대한민국 33회 서예대전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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