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오세암에서

2020.12.03 16:12:40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폭포와 소(沼)가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며 때묻지 않은 절경의 수렴동 계곡. 보고 또 보아도 태고의 신비로움에 완연한 속세를 떠나 영계(靈界)에 들어온 것일까! 가을 속 예쁜 단풍은 옥색 물빛의 맑은 물속에 자리하고, 그 물길을 머금은 바람은 상큼하다. 순례자나 산객은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사진에도 담고, 마음속에도 담으며 갈 길을 재촉한다.

오세암은 여러번 방문 기회가 있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에는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염원에 힘입어 연일 제처두고 드디어 찾게 되었다. 영시암을 지나 오세암이 내려다 보이는 만경대에 오르니 구름은 대청봉을 오르내리고 용아장성은 고운 단풍으로 한폭의 수채화다. 마등령은 웅장한 자태를 여전히 뽐내고, 내설악의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세암은 고요히 설악의 품안에 있다.

드디어 오세암에 도착했다. 풍경 소리는 정겹게 모두를 반긴다. 앞은 사자봉이요 뒤에는 칠성병품암이다. 매월당과 만해 스님이 삭발 출가한 이곳, 책을 통해 매월당을 알고 만해를 알았을 때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이 나를 며칠 동안 고뇌의 밤을 지새우게 했다. '일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와 언제나 변함없이 고독의 밤을 비추는 달로 호를 짓고, 5살에 늙을 노(老)자로 시를 지으라는 세종의 짓궂은 요청에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만은 늙지 않으셨네요"라고 시를 썼던 그 예쁜 아이는 왜 오세암에서 삭발을 하고 출가를 했을까?

"세상 맛은 여러 갈래지만 나는 그대로 있어, 이 몸은 천지간에 하나의 병신이구나. 산속 서재엔 해가 한낮인데 일도 없이 고요해서, 누운 채로 뱃속에든 일천 권 책을 볕에 말린다네."

김시습(金時習)에게는 천재라는 뜻의 오세(五歲)와 논어의 첫 문장에서 따온 이름이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매월당은 목숨을 걸고, 스님들과 비오는 밤 충절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었다. 오늘날의 사육신묘다. 그 뒤로 지조를 팔아 권력을 사고 부귀를 산 무리들에게 침을 뱉고, 허망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산에서 온종일 시를 쓰다가 방황하고, 통곡하고, 유랑하며, 이백의 장진주란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곤 했다.

세조를 임금이라 칭하지 않고 오직 단종만이 임금이라는 충정은 오늘날 위정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시 만해 스님의 '님의 침묵' 오세암에서의 작품이다. 이곳에서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한순간에 깨달음을 얻어 삭발을 하고 출가하셨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면서도,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기셨는데 "진리는 덧없는 피안의 세계가 아닌 눈보라 몰아치는 모진 현실 속에서 붉은 꽃과도 같은 굳은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나라 잃은 설움이 가슴속으로 북받쳐 올랐으리라.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은 한편의 시로 승화되어 이천만 겨레의 심금을 울려 독립심을 고취 시키신 스님의 체취를 나는 그리워했다. 오늘 백담사보다 오세암을 먼저 찾은 이유다.

또한 오세암은 정채봉 작가의 동화 '오세암' 설화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이승을 떠난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있었고 남아있는 스님의 얼굴엔 회한과 눈물이 남아있던 이곳. "아이의 순수함이 세상을 밝게 밝혀 주리라"는 믿음의 기도 속에 나의 손바닥은 어느새 마주하고 있다.

오세암에서의 점심 공양은 산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로는 처음이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모든 종교의 교리는 '자비'라 생각하며 점심 공양 시주를 하였다.

매월당과 만해 스님이 만면에 미소 지으며 설법하시는 듯한 오세암의 불경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진다. 숙연해지며 신선함이 느껴지면서 포근하고 평화로운 행복감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산사나, 명산. 계곡을 찾다 보면 가슴 벅찬 그 무엇의 감명을 받는다. 무슨 일이든 자신감이 생기고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정신은 맑아 편안하고 감사함에 다음 산행이 기다려진다. 어릴적 소풍날이 기다려 지듯이.

가세현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푸른솔 문학회 회원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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