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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5.20 20:03: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벚 꽃잎 나비되어 바람에 흩날리던 여느 봄날,

청풍 호수를 끼고 휘감은 산허리를 따라 한 박자 쉬고 돌고, 돌아 달려가는 길.

봄도 돌아오느라 늦은 듯 단양 남한강 계곡에는 온갖 봄꽃들과 연초록 싱그러운 초목들

호수와 어우러진 풍광에 숨이 막혀올 쯤, 이윽고 닿은 곳은 단양군 영춘면 하리(下里).

마을 앞뜰엔 정겨운 강물이 흐르고 뒤뜰엔 병풍을 펼쳐놓은 듯 소백 산자락이 포근하다 엄마 품처럼. 바로 이곳이 자줏빛 벼루인 자석(紫石)벼루를 4대째 만드는 신명식 선생의 공방이 있는 곳이다.

ⓒ 석길영·홍대기

그의 작업실은 붉은 돌과 돌가루가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두께로 공방 안에 가득하다.

그는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 일대에서만 생산되는 붉은색을 띤 원석으로 단양 자석(紫石)벼루를 만들고 있다.

벼루는 돌의 성질이 너무 단단하거나 무르지 않아야 하며,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결이 고와야 좋다. 자석벼루는 곱게 먹을 갈 수 있어 먹빛에서 광채가 나며 글자가 매끈하게 써진다고 한다. 원석의 고유 성질 중 수분흡수율이 낮아 먹물이 잘 마르지 않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서예가들이 소장하고 싶은 벼루임은 당연 지사.

ⓒ 석길영·홍대기

벼루를 만들 때는 원석을 채취하여 규격별로 재단을 하고,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 조각 벼루 형태로 자른 다음 정과 망치로 원석의 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벼루 모양대로 틀을 갖추는 평면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상서로운 용, 매화, 십장생, 사군자 등 원하는 모양의 밑그림을 그린 후 본격적으로 조각 작업에 들어간다. 문양을 따라 온 마음으로 조각칼에 힘을 실어 정교하게 조각한다. 조각이 완성되면 거친 표면을 사포로 부드럽게 문지르고 다시 물속에서 한 번 더 사포로 매끄럽게 연마하여 벼루가 완성된다. 벼루를 만드는 데는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작업하게 되며, 대작의 경우에는 몇 년 동안 한 작품에 매달리기도 한다.

ⓒ 석길영·홍대기

신명식 선생이 벼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조부 때부터였다. 조부는 대한제국 말기 충남 보령에서 이름을 날리던 장인이었다. 부친 역시 장인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징용되어 단양(지금의 영춘면)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역시 벼루 만드는 사역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어 풀려나와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역시 생업인 벼루를 만드셨다.

선생은 18세 때부터 가업을 잇기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친이 흘러가는 말로 "단양 어딘가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줏빛 돌이 나는데, 벼루 재료로는 세상에 이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맥이 끊긴 천하일품 벼루를 만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구비 구비 소백산 아래 작은 마을 단양 땅을 찾아온 것이다.

ⓒ 석길영·홍대기

광원권을 취득해 본격적으로 자석(紫石)을 채취하면서 시작한 작업은 가슴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피멍이 들고 돌처럼 굳어져도 전통 벼루 재현에 청춘과 세월을 묻었다.

그 열정이 서예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내놓으라하는 문필가와 서화가들의 부탁이 이어졌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하사품'으로 주문되어 문민정부 출범 직전까지 20여 년 동안 납품했고, 일본으로는 매년 20만 달러 가까이 수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벼루의 수입과 포장 먹물이 생산되면서 벼루를 찾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서예 문화도 예전만큼 관심 받지 못하는 현실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다 자석벼루의 맥이 끊어지는 것은 아닌지' 은근 걱정이 되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들 민호씨가 선뜻 배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부자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단양의 허름한 공방에서 오늘도 '자색벼루 인간문화재'의 꿈을 안고 묵묵히 전통을 조각하고 있다.

어쩌면 신명식 선생의 신념은 우리 민족의 혼이며 얼이고,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강인한 새김일지도 모른다.

자줏빛 돌에 새겨 넣은 용 문양은 장인의 꿈처럼 생생하게 꿈틀거린다.
글 / 홍대기 작가

사진 / 홍대기·석길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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