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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0.21 19:11:2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석길영·홍대기
구불구불한 산골 달팽이 논에도 계절의 흐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여름내 아버지의 잠뱅이에 땀 마를 새 없게 하던 그 곳에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슬방울을 스치며 걷는 발걸음이 시리게 느껴 질 때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곡식들은 노고에 감사 하듯 깊이 고개를 숙여 불어오는 실바람에 흔들거리며 꾸벅꾸벅 인사한다.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

어머니께서는 분주한 아침을 맞는다. 오늘이 일 년 농사의 결실을 맺는 벼 베는 날이다. 어머니는 설레이고 들뜬 마음으로 곤히 자는 나에게 얼른 일어나 이불 개고 동네 아저씨들 아침진지 드시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신다. 아침을 드신 아저씨들은 지게에 숫돌과 낫을 얹고 어느 때 보다 밝은 표정으로 벼 베러 들판으로 향한다.

아저씨들의 뒷자리를 차고 앉아 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한 시간 끝나고 선생님께 말하고 집에 와서 어린 동생을 보란다.

농사철엔 부엌에 부지깽이도 한 몫 한다고 어린 나의 손도 빌릴 요량이다.

ⓒ 석길영·홍대기
농번기인 모심고 벼 베기 할 땐 중학교 다니는 형들은 가정 실습이란 이름으로 삼사일 학교를 쉬며 농사일을 돕게 하고, 일 한다고 선생님께 말씀 드리면 조퇴를 허락하던 그 시절 시골 학교의 흔한 풍경이다.

어머니와 아주머니 두 세분이 광주리에 밥을 이고 산길 들길을 지나 새참과 점심을 해 나르던 모습, 들녘의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 먹던 들밥. 밥 한 숟가락을 논에 던지며 "고시네~"를 외치고 "내년에도 풍년 들게 해 주슈~" 하던 어른들의 모습.

누렇게 변한 황금 들판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향의 풍경이다.

애기를 등에 업고 어머니를 따라가 논두렁에서 먹던 들밥이 그 어느 산해진미 보다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벼를 베고 난 논에 흘려진 벼 이삭을 주으러 다닌다. 양식이 부족한 시절이니 오며 가며 한줌씩 주워온 벼 이삭이 한 두 말씩 되게 줍는 집도 있었다.

벼를 베면 논바닥에 볏단과 볏단을 한 줄로 마주 세워 햇볕에 말린 후 소와 아버지의 지게로 집 마당으로 옮겨 타작을 한다.

ⓒ 석길영·홍대기
빗처럼 생긴 훌태에 이삭 쪽을 기워 훑어 털기도 하고, 절구통을 업어 놓고 볏단을 내리쳐서 털다 발로 밟아 회전시켜 털던 와롱 이라는 발틀을 거쳐 동력을 사용하는 탈곡기가 나와 점점 농부의 힘과 일손을 덜었다.

탈곡이 끝난 볏짚은 소의 먹이가 되고, 겨울철 아궁이의 땔감이 되기도 하고, 이엉을 엮어 초가집을 새로 고치고, 새끼줄을 꼬아 가마니와 멍석 망태기를 만들어 내년 농사지을 도구를 만들었다.

이 무렵 아이들은 주전자나 빈 병을 손에 들고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이에 신이 난다. 아이들의 해 맑은 웃음소리에 하늘은 더욱 파랗게 물들고, 농사철 내내 물을 댄 둠벙도 자기 일을 끝낸 냥 물을 빼고 휴식을 취하면 아이들은 흙속에 숨어 있는 미꾸리를 잡느라 온 몸에 흙 태배기 투성이다.

놀이에 지칠 무렵 한 녀석이 "우리 꽁 떼기 해 먹자"하는 말 한마디에 우루루 몰려 나가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우고 논두렁에서 콩 몇 포기를 뽑아 구어 먹는다. 불 속에서 꺼낸 뜨거운 콩을 호호 불며 까먹다 입과 얼굴에 새카만 검정 칠이 된 모습을 보고 서로 깔깔대고 웃던 순수하고 해맑던 어린 시절 추억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보여 줄 수는 없을까.

ⓒ 석길영·홍대기
추수! 자연에서 키우고 자연에서 취하며 자연으로 돌려주던 그래서 나이 드신 어른들은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자식들에게 지게질하며 땅 파는 고생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과 급속도로 발전한 문명이 우리의 고향을 빼앗아 가 버렸다.

구불구불 논둑길은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되어 우리의 마음마저 각 지게 만들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하던 일은 한 대의 농기계가 수십 수백 명의 일거리를 해 치우고 논두렁에 둘러 앉아 어머니의 광주리에 담겨온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음식은 오토바이 타고 달려온 차가운 철가방의 자장면이 대신한다.

부족 하지 않은 풍요로움 속에서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은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여름 겨울 방학이면 찾아가 추억을 만드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과 외갓집은 이대로 없어져도 되는 걸까.

추수가 끝난 벌판에 해가 서산을 넘으면 땅 바닥을 온 몸으로 기어 다녔던 흙 태배기 농부의 눈은 붉게 눈시울을 붉히고 그렇게 하루해는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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