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포토에세이 People & Life - 천년을 색칠하다 '김성호 옷칠 명장'

  • 웹출고시간2012.10.14 18:50: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 건 그곳에 잃어가는 우리네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잊고 있었던 우리네 아름다움 나전칠기 전통을 이어온 손길들이 척박한 땅위에 다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색은 은은한 듯 깊고, 칠은 세월을 두고 그 빛을 발한다. 자연의 색을 담아 자연의 빛으로 탄생하는 나전칠기 천년 세월을 건너온 옷칠의 광택 속에서 나전칠기는 살아있는 색으로 빛난다.

자연에서 얻은 신비한 도료 옷칠, 옷칠은 옷나무의 수액에서 얻는다.

먼저 생옷을 걸러 찌거기를 제거한 다음 정제된 상태에서 칠을 시작한다,

옷칠은 옷을 다루는 과정부터 수련이 시작되는 녹록치 않은 작업이다,

칠을 알기까지 5년, 제대로 된 칠을 하기까지는 10년의 공력이 든다.

공들인 장인의 땀만큼 옷칠은 색을 내는 것이다.

옷칠의 묘미에 빠져 평생을 칠에 매달려온 장인

그 손끝에서 옷칠은 화사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은은한 듯, 선명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를 더하는 색. 나전칠기는 자연의 색이다. 오래될수록 또 빛을 발하는 것이 옷칠이다.

나무결 따라 깊이 베인 옷칠은 자연을 감싸고 천년의 세월을 감싼다.

옷칠의 광택이 색으로 완성되는 나전칠기.

나전칠기의 진정한 색은 건조가 된 후에야 살아난다. 시간을 두고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고고한 검은 광택위에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자연을 피워내는 장인이 있다.

오랜 세월을 견딘 옷칠처럼 장인의 외길 고집을 살아온 명장.


그가 바로 충북 청주에서 해봉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호(55)명장이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요즘 보기 드문 나전칠기함 등 각종 옷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 명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다섯 나이에 외삼촌 손에 이끌려 공방에 들어가면서 칠기와 첫 인연을 맺었다.


가정에 칠기 장롱 하나 들여놓는 게 꿈일 정도로 칠기의 인기는 높았지만 열다섯 소년에게 공방일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기술보다는 호분(조개껍질을 태운 재) 치우는 일부터 온갖 허드렛일은 도맡아 했다.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낄 무렵 우연히 나전칠기 분야 전통기법의 대가인 늘가 이성운 선생 전시회를 보고 칠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칠기하면 대부분 생활가구의 개념이었는데 전시회를 보고 칠기도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칠기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뜬 그는 그 길로 무작정 선생을 찾아가 문하생이 될 것을 간청했다. 그리고 12년 넘게 선생으로부터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쌓아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개껍데기와 씨름하며 자신만의 솜씨를 익혀 나갔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주민등록증 발급 나이가 됐을 때는 고된 작업으로 지문이 다 지워져서 일곱 번이나 동사무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 나전칠기 현대화에 공헌한 목공예가 (故)백태원 중앙대 교수를 만나 2년 동안 작업하면서 현대적 디자인 감각을 접목시킨 작품을 제작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외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타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95년 7월 가구공장을 설립했지만 IMF로 모든 것을 잃고 같은 처지의 선배와 함께 1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떠돌며 유랑생활을 했다.

큰 절은 물론 작은 암자등 발길 닿는 대로 찾아가 찾아다니며 옻칠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편 재기를 위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한 사찰에서 2년 분량의 옻칠 작업을 의뢰받아 옻칠 불사를 하게 됐고 재기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지금 운영하는 해봉공방을 내고 새로운 작품 제작에 매달렸다. 특히 조개껍데기를 대체할 새로운 자연소재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조개껍데기의 경우 90% 이상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쉽게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이 계속 올라 어려움이 많았다. 여기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중국산 칠기로 인해 작품을 만들어도 제값 받고 팔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2년여 연구 끝에 계란껍질(란각)로 칠기의 문양과 멋을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노동부로부터 칠기 명장에 선정됐다. 40년을 한결같이 칠기를 연구하고 계승하려는 그의 진심을 알아줬기 때문이다.

칠기는 삶의 전부이자 존재의 이유라는 김성호 명장. 그는 "전통은 옛 것을 지키는 정신이다"며 "뿌리는 두고 열매는 시대에 맞춰서 변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매 시기를 거치면서 자기가 변화되고 발전하듯이 근간은 유지하되 당대의 결실물들은 지속적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는 묵묵히 천년의 세월을 색칠한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