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53(최종)회

2018.12.20 17:12:36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장

 동방이 강림처사 패거리와 야합을 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조직의 분위기가 혼란과 충격에 휩싸였다.

 "세상에 그럴 수가!"

 "그런 사심이 있으면서 그동안 천진난만한 얼굴로 우리를 속였던 거야?"

 "그러게 말이야. 영악한 강림처사보다 더 한 놈이었어."

 "동방이라면 쌍심지를 켜고 감싸던 선배들은 어쩌고 있어?"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으니까 숨었겠지."

 여기저기서 동방을 힐난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윙윙거리며 돌아다녔다.

 더 이상 일이 커지기 전에 막아보려고 진 선배와 함께 염라대왕님을 만나러 갔다.

 그러나 대왕님은 자리에 없었다. 대왕님을 보필하던 사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진 선배님. 저들이 대왕님까지 해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죄 없는 인간들까지 해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데까지는 막아보자고."

 가쁜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급히 이승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서로의 불안한 마음을 껴안았다.

 "김 사자.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심상치 않으면 자진해서 퇴출자가 되자고. 살고 싶은 자는 더 살고 더 살고픈 미련이 없는 우리가 그들 대신 사라져주면 좋잖은가."

 "그러지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승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뭔가 다른 기운이 감지됐다. 진 선배도 그걸 느꼈는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눈만 껌뻑였다.

 아수라장이 돼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긴장감과 고요함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청사 현관 앞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염라대왕님이 나오고 있었다. 혹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손바닥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대왕님이 우리를 보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대왕님 앞으로 가서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했다.

 "어허,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자들이 어딜 쏘다니다 이제야 나타나느냐?"

 허리를 굽힌 채 이게 어찌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왁자한 소리가 들려 허리를 펴고 앞을 보니 대왕님 뒤로 강림처사와 그의 일당들이 조기 꾸러미처럼 줄줄이 엮여서 끌려나오고 있었다.

 나는 동방을 찾아 눈알을 굴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마음이 놓여 그동안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숨은 왜 쉬느냐?"

 "아, 아닙니다. 다만 그저……."

 "왜? 저 패거리 안에 너의 심복이라도 있는 게냐?"

 "아, 절대 아닙니다. 그런 게."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

 "허허. 내가 그리 두려우냐?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자니라. 이제 그만 고개를 들어라."

 진 선배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대왕님을 올려다봤다.

 우리 시야에 들어 온 분은 인간들과 사자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염라대왕님의 모습이 아니라 인자하고 풍채 좋은 노인 한 분이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그 분을 바라보니 웃고 있는 눈이 딱, 동방의 눈이었다. 더구나 입을 귀 쪽으로 살짝 끌어올리며 웃는 입모양도 동방과 똑같았다.

 "동방!"

 나도 모르게 대왕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옆에서 진 선배가 내 팔을 잡고 말렸다.

 "동방. 아니 대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요?"

 "얼마 전부터 장난질을 치는 놈들이 있다기에 그 현장을 잡으러 변장해서 왔다. 물증을 잡았으니 이제 나는 갈란다. 그동안 고마웠다. 너 때문에 대왕자리에서 내려와서 나도 사자나 했으면 좋겠다."

 염라대왕님은 우리를 보고 피식 웃더니 순식간에 빛이 돼 하늘로 사라졌다.

 "동방. 잘 가게나. 앞으로 자네가 그리울 걸세."

 빛이 사라진 자리에 하얀 뭉게구름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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