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

2013.05.29 13:29:48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삼돌씨 성화에 못 이겨 마님은 모처럼 가까운 산을 찾았다. 삼돌씨 뒤를 쫓아가며 헉헉대는 마님 숨소리에 조용하던 산자락이 재채기를 해댄다. "삼돌씨, 좀 쉬었다 가며 안 돼? 힘들어 죽겠어." "마님, 조금만 더 가면 찻집이 나오니까 거기 가서 쉽시다." 마님은 기가 막혀 죽겠다는 듯 삼돌씨를 쏘아보며 투정을 부린다. "에이 씨, 산속에 찻집이 어딨어· 찻집은커녕 벤치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삼돌씨가 뒤쫓아 오는 마님을 보고 웃더니 손가락으로 어느 나무를 가리킨다.

"여기가 내가 말한 첫 번째 찻집이야. 어때? 근사하지?" 마님 얼굴이 굳어지며 벌게진다. 머리에 금방이라도 뿔이 솟을 것 같은 분위기다.

"지금, 누구 놀려· 이게 나무지, 무슨 찻집이야?" 삼돌씨가 껄껄 웃으며 손으로 나무 등걸을 더듬더니 갈라진 틈새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고로쇠나무인데, 이른 봄이면 이런 틈새로 달착지근한 수액이 흘러나와." 마님은 고개를 들고 삼돌씨가 더듬고 있는 나무 틈새를 올려다본다. 나무 틈새로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 곳이 사람들이 드릴로 구멍을 뚫어서 수액을 빼냈던 자리야." "드릴로? 살아 있는 나무를?" 마님은 말도 안 된다는 투로 삼돌씨에게 따지듯이 묻는다.

"그럼, 한 나무에 아마 서너 개씩은 뚫었을 걸." 마님은 '드르르' 소리를 지르며 나무속을 뚫고 들어가는 드릴 소리가 들리는 듯 얼굴을 찡그린다. 마님 팔뚝에 소름이 오싹 돋는다.

"삼돌씨! 그런데 왜 나무를 보고 뜬금없이 찻집이라고 한 거야?" "내가 어렸을 때는 새들이 나무껍질의 갈라진 틈새에서 배어 나오는 수액을 먹었거든. 제일 먼저 딱따구리가 먹고, 동고비, 곤줄박이가 다음 손님이 되어 먹고, 남은 건 사람들이 차지했지. 그때 우리는 대나무 갈대를 수액이 흐르는 곳에 대고 주전자에 받아서 먹었거든.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혔는데……." 삼돌씨는 금방 수액을 먹은 것 마냥 입맛을 다신다.

"그게 찻집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이 나무가 산속에 사는 새들에게는 찻집이었거든. 찾아오는 손님 누구에게나 달착지근하고 시원한 음료를 공평하게 나누어주던 나무였는데……." 마님은 그제야 찻집의 의미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고는 나무를 다시 올려다본다.

"새들은 나무에서 흐르는 수액을 먹을 만큼 받아먹고는 다음 손님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지만, 요즈음에는 사람들이 무지막지하게 구멍을 뚫고 강제로 빼가니까 나무껍질 밖으로 흘러나올 사이도 없어. 그래서 이젠 새들도 찻집을 찾지 않고 있지." 삼돌씨가 마님을 보고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마님도 삼돌씨를 보고 고개를 끄떡거려 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삼돌씨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마님, 이 삼돌이가 마님에게 고로쇠나무 역할을 해 줘야 할 텐데……." 삼돌씨는 마님을 바라보고 측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삼돌씨! 달콤한 수액 따위는 안 줘도 괜찮으니까, 제발 마당에 풀이나 좀 뽑아 줘." 마님이 입을 비죽 내밀고 삼돌씨를 보고 눈을 흘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찻집뿐일까?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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