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9회

2016.07.21 15:33:23

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동방과 헤어지고 나서 그녀를 처음 보았던 개울둑을 터벅터벅 걸었다. 나는 아직 이달의 목표를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처럼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그래, 늘 쫓기듯 사느니 소멸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게야.'

내 혼이 소멸되기 전에 인간세상의 풍광이나 실컷 보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버들잎이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공연히 내 가슴이 아릿해왔다. 문득 이런 땡볕을 받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우주 기운을 직접 받던 때가 있었지. 그때는 그런 것에 고마워할 줄 몰랐겠지만…."

"헤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죠?"

등 뒤에서 동방이 내 옆구리를 톡톡 두드리며 웃고 있었다.

"아니, 언제부터 따라왔나?"

"처음부터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느라 불러도 못 들으십니까?"

동방이 입을 비죽 내밀며 툴툴거렸다. 금방이라도 응석이 튀어나올 듯이 그의 볼이 볼록거렸다.

"허허. 자네는 저승사자 직이 안 어울리네. 그리 말랑해서야 어디 원…."

"피, 사자님도 마찬가지면서. 그리 마음이 여려서 인간들이 무서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하하.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구먼."

연신 헤헤거리며 즐거워하는 동방은 아무래도 인간이었을 때의 감정을 벗지 못하고 저승으로 온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의 혼을 안내하는 일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저승사자들의 첫 번째 금기가 인간과 동화되면 안 되는 거다. 인간들의 혼을 안내하다보면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해 애걸복걸하는 자가 많다.

어떤 이는 병든 노모를 두고 먼저 갈 수 없다고 버티기도 하고, 어떤 자는 평생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재산을 두고 못 가겠다고 버티기도 한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다 들어주다보면 데려갈 혼이 어디 있겠는가.

"자네는 저승사자 직이 전혀 맞지 않아 보이는데 어찌하다 이 길로 들어섰는가?"

"헤헤. 그야 저도 모르죠. 그러는 사자님은 어찌하다 저승사자가 되셨습니까?"

"그러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떨어졌을까"

동방은 나를 올려다보고 진지하게 말했다.

"김 사자님을 보면 다른 사자님하고 달라 보여요."

"그럴 거야. 내가 좀 어리바리하니까.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동방이 내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면서 장난을 쳤다.

"헤헤. 그건 아니고요. 사자님이 아주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틀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도 느꼈거든요. 꽝꽝 얼어붙어있던 분위기가 사자님의 '미친놈' 발언으로 스르르 녹는 걸. 사자님도 느끼셨죠?"

"허허. 과장하지 말게. 알량한 자존감 운운하며 쓸데없는 객기를 부린 것뿐이네."

"헤헤. 뭐, 그렇다고 해도 좋아요. 지루하고 따분한 저승사자 일이 사자님 덕분에 재미있어질 것 같거든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죽겠어요. 얼마나 궁금했으면 지금 배꼽까지 간지러워서 미치겠다니까요."

나는 동방의 어깨에 팔을 걸고 그의 머리에 내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인간들은 삶이 너무 짧다고 투덜대는데 사자들의 삶은 너무 길어. 터무니없이 길 단말이야."

"딩동댕! 맞아요! 너무 지루해요."

동방이 내 배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앞으로 김 사자님만 따라다닐래요. 가는 곳마다 뭔가가· 그러니까 기적 같은 거라든가· 아무튼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죠."

동방은 고개를 갸웃대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적은 먼데 있지 않고 여기에 있었다. 바로 동방의 눈빛 속에, 그의 천진난만한 마음속에.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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