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2013.11.27 17:13:35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하품을 하며 창문을 열던 마님이 삼돌씨를 호들갑스럽게 부른다.

"와! 삼돌씨! 얼른 와 봐. 첫눈이 왔어!"

삼돌씨가 마님 등 뒤로 다가와서 창밖을 내다보며 시큰둥한 얼굴로 핀잔을 준다.

"마님, 출근길이나 걱정하셔."

반가운 기색이 전혀 없는 삼돌씨를 마님이 힐금 돌아보고 따지듯 묻는다.

"표정이 왜 그래· 삼돌씨는 첫눈이 반갑지도 않아?"

"첫눈? 흐흐 첫눈은 마님이 라오스 간 사이에 벌써 왔다갔네유."

마님이 콧등을 실룩이며 실망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 없는 사이에? 정말? 의리 없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님은 입까지 헤벌쭉이 벌리고 좋아한다.

"마님, 눈이 뭐가 좋다고 애들 모양 들떠서 난리여?"

"무척 좋아. 눈도 좋고, 모든 게 다 좋아."

마님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지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말을 한다.

"삼돌씨, 나 이제부터 투정이나 불만 같은 거 안 할 거야."

"뜬금없이 뭔 말이여?"

"거기, 라오스 사람들 사는 모습 보니까, 국가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았거든. 생각해보니 국가가 내게 해주는 게 너무 많은 거야."

삼돌씨가 마님 어깨에 손을 얹고 묻는다.

"우리 마님 애국자 돼서 돌아왔네. 그럼, 삼돌이는?"

"당근, 삼돌씨도 엄청 소중하지."

"내가 옆에 없는 동안 우리 마님 어깨가 돌덩이처럼 뭉쳤네. 이래서 삼돌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흐흐흐." 흥이 실린 삼돌씨 손이 마님 어깨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인다. 마님은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텔레비전에서 일부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불만을 목소리 높여 부르짖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거든. 때로는 국가가 부끄럽기도 했고."

"아이고, 그랬슈?"

마님은 삼돌씨가 맞장구를 쳐주니까 고개까지 끄떡이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후진국을 보고 오니까 그것마저 고마운 거야. 우리가 그래도 살만하니까 부족한 부분도 보이는 거 아니겠어?"

"그야, 그렇지."

마님은 목소리에 힘까지 줘 가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국가가 힘이 없으면 국민들이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거야. 당장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벅찰 테니까. 삼돌씨, 그렇지 않아?"

"당연하지."

삼돌씨는 마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싫어 꾹, 꾹, 누르며 그렇다고 대답해준다.

"마님, 거, 왜, 남자들이 특별대우 받는 그런 건 안 보고 온 거유? 그런 걸 보고 왔어야하는데……."

"그렇잖아도 그거 얘기하려고 했어. 거기 어떤 부족은 애기도 여자가 낳아 키우고, 살림도 여자가 하고, 농사일도 여자가 다한대."

"그러면 머스마들은 뭐하고?"

"뭐, 그냥 애기 생기는 역할만 한다나 뭐래나."

삼돌씨 얼굴이 갑자기 환해진다.

"마님! 나 거기로 이민이나 확 가버릴까?"

마님이 깔깔깔 웃으며 그런 삼돌씨 손등을 세차게 내려친다.

"흥! 삼돌씨는 그런 용도로도 폐기처분 감인데 누가 받아주겠어? 꿈 깨."

삼돌씨는 풀이 죽은 시늉을 하며 슬그머니 어깨에서 손을 내려놓는다.

"삼돌씨, 조금만 더 해 봐. 아직 다 안 풀렸단 말이야."

삼돌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툴툴댄다.

"지금 삼돌이가 마님 어깨나 주무르고 있을 때가 아니여. 내 자아를 찾아야 돼."

삼돌씨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삼돌씨, 내 차에 눈 좀 털어줘."

"몰러, 마님이 알아서 해."

마당으로 떨어지던 하얀 눈이 거실 안을 슬몃슬몃 훔쳐보다가 웃음을 후르르 풀어낸다.

마님네 마당에 하얀 웃음이 소복이 쌓여간다.

그동안 소중한 줄 몰랐던 모든 것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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