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33회

2018.03.15 13:50:50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2차 퇴출자가 게시되고 난 이후 저승사자들의 태도도 변했지만 강림의 태도가 많이 변했다. 퇴출자 선별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도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자들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었다.

특히 사자들이 전체 모이는 자리인 회의나 교육시간에는 그의 빛나는 외모와 진행 매너가 그를 더 돋보이게 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사자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었다.

"강림차사는 못하는 게 도대체 뭐야?"

"그러게.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니까."

"맞아. 얼굴이 잘 생기고 재주가 뛰어나면 머리가 좀 둔하던지. 이건 뭐 다 가졌으니."

"그러게 말일세. 우리 같은 평범한 사자들은 언제 저런 단상에 서 보겠나."

많은 사자들이 그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면서 선망하는 동안, 아니 정확히는 퇴출자 선별계획을 실행하면서 조금씩 그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여러 사자들을 몰고 다니면서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그를 따라다니는 사자들이 그를 우쭐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강림차사님만큼 잘 할 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슨 그런 말이……."

강림차사가 낯간지러운 칭찬에 어색해하자 사자들 몇이 그를 더 띄웠다.

"아, 정말입니다. 차사님이 여기 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조직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진 사자! 그랬지 않았나?"

"암요. 그렇고말고요. 그랬지요."

강림은 그들의 추켜세우는 자신을 스스로 우러러보는 것처럼 보였었다. 처음에 그에게서 풍겼던 날카롭고 도도한 이미지는 맑고 깨끗하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었지만 그의 그런 이미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퇴색해가고 있었다.

처음에 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강림은 이제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억지로 우러러보는 척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삼삼오오 마음이 통하는 사자들끼리 모여 수군대는 소리에서도 확인되었다.

"강림차사를 따라다니는 저들은 뭐야· 왜 저런대?"

"야, 그걸 말로 해야 아냐· 다 노력하지 않고도 목숨 부지할 길 찾는 거 아냐· 다 알면서 왜 내숭은 떨어·

"그거야 그렇다 치고. 진짜 강림차사 끗발이 그렇게 대단해?"

"암튼 지금은 강림차사가 실세인 건 분명해. 그러니까 퇴출자 색출작업을 맡은 걸 거야."

사자 하나가 몸서리치는 시늉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무시라. 작년부터 인간들 세상에서는 누가 실세다, 누가 비선실세다, 하면서 떠들어대더니 올해는 그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더라고. 우리는 실세다 그런 말 하지 말자고. 우리도 그네들처럼 언제 붙들려갈지 어찌 알겠는가. 안 그런가?"

그들이 자기들끼리 킥킥대며 현재 돌아가는 꼴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동방 이야기로 화재를 돌렸다.

"이보게.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그 애송이 동방 말이야. 자기가 2차 퇴출자에 속했는데도 아주 태연하잖아. 우리 같았으면 그럴 수 있었겠나·"

"나 같으면 먹지도 자지도 못했을 거야. 무서워서."

"참으로 희한하단 말이야. 그는 도대체 뭘 믿고 그리 태연한 걸까?"

"암튼, 뭔지는 모르지만 강림차사보다 더 희한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지 싶어."

"뭐야· 그럼 대왕님 아들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게 대단한 빽을 쥐고 있는 인물일까?"

"예끼! 그런 말 말게. 내 여태껏 살면서 대왕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네.

그들은 자기들끼리 수군대다 자기들 말에 스스로 취해서 킥킥대며 웃었다.

"이런 불충한 사자들을 보았나. 대왕님 명예에 똥칠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다니……."

"그야 모르지. 우리 모르게 대왕님에게 숨겨놓은 아들이 있을지도. 흐흐."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승사자들 입에서 염라대왕님을 대상으로 농을 하는 짓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성역을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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