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4회

2016.03.17 13:24:06

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여자는 이승의 나이로 23살이다. 2057년에 명을 거둬들여야 하니 이승에서의 삶이 아직도 한참 남은 셈이다.

"혼을 때어내기에는 아직 어리긴 하군."

나는 여자의 혼을 떼어내면서 여자와 함께 사는 인간의 혼도 함께 떼어볼까 하고 여자네 집을 들여다보았다. 오십이 갓 넘은 남자 인간 하나와 혼이 붙들려 갈 날이 멀지않은 노파가 있었다.

"음, 좀 써먹을 수 있으려나?"

나는 여자와 함께 사는 두 인간의 혼을 들여다보았다. 늙은 여자의 혼은 팍팍하고 푸슬푸슬해서 무게도 제대로 나가지 않아 떼어내고 할 것도 없었다. 여자의 남편인 듯싶은 사내의 혼은 여자처럼 말랑하지 않을뿐더러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저걸 떼어서 정화시키는 시간에 딴 혼을 구하는 게 빠르겠군."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세상일이 만만한 게 없었다.

"다른 저승사자들은 잘도 목표를 채우던데…."

나는 일이 생각처럼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 한숨을 쉬며 여자를 지켜보다가 안방을 기웃거리던 여자의 어깨가 조금 흔들리는 걸 보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노파가 가래 끓는 소리로 여자에게 욕을 퍼부었다.

"야, 이년아! 우릴 굶겨죽일 작정이냐?"

여자는 화들짝 놀라서 노파에게 달려갔다.

"얼른 밥 할게요. 들어가 계세요."

노파는 눈을 흘기며 여자를 다그쳤다.

"너! 반반한 얼굴 믿고 딴 짓하고 다니지? 꼴값하지 말고 빨리 밥 줘!"

"알았어요. 금방 줄게요."

여자는 노파의 어깨를 부축하고 노파를 방으로 밀어 넣으며 혼잣말을 했다.

"에효. 힘들다."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차려 노파의 방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또 한상은 안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안방에서 텔레비전 소리와 코 고는 소리가 밥 냄새에 섞여 밖으로 튀어나왔다.

"일어나서 저녁 먹어요."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요. 밥 먹어요."

그때, 와장창!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지금 막 환장하게 좋은 꿈을 꾸고 있는데 깨워? 너, 요새 아주 간땡이가 붓다 못해 터지지? 엉?"

내가 막 벽을 통과해서 안방으로 들어가는 사이에 남자가 여자를 걷어차고 있었다. 여자는 잔뜩 웅크린 몸을 벽에 붙이고 떨고 있었다.

"이런 쳐 죽일…."

나도 모르게 쌍소리가 나왔다. 이승에서 한 삼백여년 인간들과 부대끼며 지내다보면 인간들의 쌍소리까지 따라하게 된다.

"너! 지금이 몇 시야? 공장은 다섯 시에 끝난다며? 왜 이제 온 거냐고? 배고파서 너 기다리다가 깜빡 잠들었잖아? 이 쌍!"

여자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응얼응얼 옹알이하듯 변명을 했다.

"오다가 버들강아지를 구경하느라고…."

남자는 콧김을 팍팍 뿜으며 여자를 윽박질렀다.

"너, 또 그놈의 버들강아지와 이야기했지·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미친년하고 산다고 나를 등신 취급하잖아?"

여자는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밖으로 나오며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남자에게 빌었다.

"안 그럴게요. 다시는 걔네들하고 이야기 안 할게요."

"아휴, 저걸 그냥, 콱!"

남자는 널브러진 밥상을 다시 걷어차며 소리를 꽥 질렀다.

"야! 다시 밥 차려 와!"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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