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41회

2018.07.05 18:25:57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3차 퇴출자 선별 심층면접 시행 공고가 게시되었다.

면접기간은 2개월이고 면접방법은 2차 퇴출대상자로 선정된 자 중 총괄담당과 1:1 심층면접을 통해 충성도가 낮은 하위 3%의 사자를 고르는 거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선정된 사자는 영원한 무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사자들에게 퇴출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어차피 소수의 사자 몇이 퇴출되는 것이고 이미 나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일부 사자들은 퇴출제도가 이번 1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매년 반복될 것이며 그렇게 수회 지속되다보면 지금까지 저승사자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왔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의식과 사자들끼리의 존중 따위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더 나아가서 지역을 총괄 담당하는 사자의 입맛에 맞춰 변질될 우려가 높을 것이라는 건 자명한 일일 것이다.

저승사자들의 기본 임무는 죽은 자를 저승까지 편안하게 안내하는 것이다. 안내 후에 벌어지는 일은 순전히 죽은 자의 몫이다. 살아생전 지은 죄와 베푼 덕에 따라 윤회를 하거나 저승사자가 되거나 지옥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러나 지금 우려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 벌어진다면 인간이 죽어서 저승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미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누군가 조심스럽게 내 옆에 와 앉는 기척을 느꼈다. 상대를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는 태도를 봐서 그가 진 선배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그에게 목례를 했다.

"무슨 생각이 그리 깊은가·"

"아, 예, 선배님. 그냥 쉬고 있었습니다."

"쉬고 있는데 내가 공연히 방해를 했나보네."

"아이고, 아닙니다."

옆에서 보니 진 선배가 전보다 야위어보였고 목소리도 기운이 없었다.

"선배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우리가 불편한 걸 느낄 호사가 있어야지. 허허."

그가 힘없이 뱉어내는 웃음이 허허롭게 느껴졌다.

"진짜 무슨 일 있으신 거지요·"

"일은 무슨. 그저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을 뿐이네."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300여 년 전 새내기 저승사자일 때와 지금 나를 비교해보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져 있다. 그러니 나보다 훨씬 더 이 일을 오래한 진 선배의 태도가 이해가 됐다.

"그래도 기운을 차리셔야지요."

"그래야지. 적어도 지금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도움은 못 되더라도 거치적거리는 존재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선배님. 무슨 그런 말씀을……."

진 선배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멍하니 앞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 존재한다는 게 몹시 귀찮구먼. 혈기왕성한 동방이 퇴출대상자가 될게 아니고 나 같은 자가 선택되었어야하는데……."

진 선배의 허허로운 마음이 그의 말 속에 묻어서 내게 전달됐고 내 몸에서도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선배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선배님은 그냥 저희들 곁에 게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분이신데요."

"허허. 고맙네. 그렇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그저 자네들한테 미안하고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네그려."

나는 어떻게 그를 위로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를 통해 내 영혼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도 귀찮고, 저승사자 짓은 더더욱 귀찮고, 그저 무로 돌아가서 모든 걸 놓고 싶을 뿐이네."

진 선배의 말을 듣다보니 그런 생각은 나도 늘 해오던 생각이었다. 그것이 내 의지대로 된다면 못 할 일이 무엇일까만은 그 또한 우리의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보니 그저 망상으로 그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은 저도 수없이 해왔었습니다."

진 선배가 구부렸던 등을 펴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무슨 소리야! 누구 맘대로!"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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