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25회

2017.08.10 15:01:47

권영이

한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아침부터 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어떤 사자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 한 얼굴로 바닥에 털퍼덕 주저 않기도 했다. 퇴출기준 1차 심사결과 발표 내용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쉬는 사자와 충격을 못 이겨 주저앉는 사자로 나뉘어졌다. 아직 결과를 못 본 사자들의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공고문에 적힌 명단을 보기위해 많은 사자들이 공고문이 붙은 벽에 머리를 서로 들이미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1차 서류심사는 저승사자가 되기 전인 인간세상에서의 출신성분으로 점수가 매겨졌다. 아무도 자신이 인간세상에서 어떻게 살다가, 언제 죽어 저승으로 왔으며, 어떻게 저승사자가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으니 심사결과에 승복하기가 힘들 것이다.

"왜· 난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어흐흑."

바닥을 치며 울부짖는 사자는 평소에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사자였다. 명단에서 빠져 한시름 놓았다고 얼굴이 편안해진 사자들도 그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워했다.

"이건 아니지. 이래선 안 되는 거잖아·"

"저이처럼 성실한 자를 퇴출시킨다는 건 문제가 있어."

"아,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말아야하나."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와 한숨 쉬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엉켜 순식간에 지옥이 되고 말았다. 1차 서류심사 퇴출 대상자는 77명이었다. 그들의 분노와 절망의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보여주시오! 내가 인간세상에서 어떤 출신성분이었는지!"

"맞소! 그걸 입증해주지 않고 평가한다면 우린 받아들일 수 없소!"

"이건, 사전에 우릴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올가미요!"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몇 명이 그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차마 명단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 안에 내 이름이 들어있을 확률이 10%이니 그 누군들 이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나처럼 두려움에 공고문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자들 몇몇이 무리에서 벗어나 서성거렸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그들 안에 숨은 두려움이 훤히 보였다.

나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무리 속을 빠져나왔다. 결과가 어떻던 내 힘으로 뭘 어찌해볼 방법은 없을 것이니 잠시나마 내가 그 속에 속하지 않았으리라는 억지 믿음이라도 갖고 싶었다.

"김 사자님!"

등 뒤에서 동방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동방이 내 손을 슬며시 잡고 말했다.

"사자님. 축하드립니다. 사자님은 1차는 통과했네요."

"아, 하."

꾹꾹 숨겨 놓았던 불안과 두려움이 이제 살았다는 듯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왔다.

"아, 그런가· 나는 못 보았네. 자네도 물론……."

"휴. 제 이름은 저 명단에……."

나는 동방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알아듣게 말을 하게. 들어있다는 게야· 아니라는 게야·"

평소에 장난기를 묻히고 생기발랄하던 동방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무심한 듯 달관 한 표정을 하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저 명단에 제 이름이 당당하게 올라있습니다."

"헉! 말도 안 돼! 자네가 왜·"

힘이 풀려 다리가 저절로 푹 꺾였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무슨 놈의 세상이 이렇단 말인가. 자네같이 영특하고 특별한 사자를 어찌……."

"사자님. 너무 걱정 마세요. 아직 2차, 3차 심사가 남았는걸요."

"자네처럼 영혼이 맑고 밝은 사자들은 전생의 삶도 깨끗할 텐데 1차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네. 누군가의 농간이 아니고는……."

"헤헤. 그럼 우리 농간 부린 자 찾기 게임이나 할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나·"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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