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벌

2012.07.25 16:28:27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푹푹 찌는 더위에 마님네 초록색 지붕도 낮술 먹은 꼴로 헐떡거리고 풀벌레들이 부채 부치는 소리가 사락거린다.

창이란 창은 다 열어놓아도 바람 한점 들어오지 않고 선풍기조차 더운 바람만 내뿜는다.

"우~~ 너무 덥다. 이럴 때는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시원할 텐데……. 소나기는 지금 어디 가서 딴 짓하느라고 코빼기도 안 보인담."

마님이 열어놓은 창가에 앉아 투덜댄다.

"더워야 곡식이 잘 익지. 그렇잖아도 곧 장마철이 올 텐데 뭘 그렇게 서둘러서 비를 부르려고 해?"

"아, 몰라, 몰라. 곡식이야 익든 말든 좀 덜 더웠으면 좋겠어. 너무 더워서 미칠 것 같아. 마님 체면에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도 없고……."

마님은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를 꺼버리고 신경질적으로 부채질을 한다.

"지금 막 당신 좋아하는 포도가 익어가고 있는데 비가 오면 어쩌라고?"

"아, 맞아. 내 포도!"

마님은 그동안 잊고 있다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포도나무를 올려다본다. 이제 막 익기 시작하는 포도송이가 마님을 내려다보고 웃는다.

"와! 한 열흘만 지나면 다 익겠는데."

마님 입이 귀밑까지 올라간다. 삼돌씨가 그 모습을 보고 손등으로 마님 입가를 닦아준다. 마님이 왜 그러느냐는 눈빛을 보낸다.

"아이구, 우리 마님 침 흘리는 것 좀 봐. 이러다 익기도 전에 다 따 먹겠구먼."

마님이 입을 비쭉 내밀고 삼돌씨를 바라본다.

"마님, 왜, 그런 얼굴로 지를 보남유· 지가 볼수록 잘 생겼슈?"

삼돌씨가 마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장난스럽게 묻는다.

"익으면 뭘 해. 땡벌이 무서워서 따지도 못할 걸."

"걱정 마. 올해는 놈들이 포도나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까."

삼돌씨가 목소리에 힘까지 줘가며 큰소리를 친다.

작년에도 포도가 익으면서 땡벌이 진을 치고 있어 포도나무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유난히 신 과일을 좋아하는 마님을 위해 심은 포도나무인데, 몇 년 전부터 포도가 익을 무렵에는 땡벌이 포도나무에 집까지 짓고 살림을 차렸다.

마님이 포도가 먹고 싶다고 투덜대면 삼돌씨가 손전등을 들고 밤에 몰래 몇 송이 따오곤 했다. 그러다 땡벌에게 쏘여 얼굴이 팅팅 붓는 일도 종종 생겼다.

"이거야, 원. 객이 주인 행세를 하고 주인이 도적질을 해야 하니……."

삼돌씨는 작년에 벌에 쏘였던 일이 멋쩍은지 손으로 얼굴을 쓱쓱 문지르며 혼잣말을 한다.

"양심도 염치도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올해는 절대로 내 포도를 빼앗기지 않을 거야."

시골에 사는 벌, 개구리, 두꺼비가 모두 순박한 줄만 알았다가 혼쭐이 났던 마님이 입을 앙다물고 다짐을 놓는다.

"올해는 눈이 밤팅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포도를 지켜내고 말아야지."

그런 마님을 올려다보던 희둥이가 코를 실룩이며 코웃음을 친다.

"흥, 내가 지금까지 마님이 뭐 제대로 하는 거 한 번도 못 봤슈. 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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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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