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

2013.12.25 13:48:04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마님은 요 며칠째 말수가 부쩍 줄었다. 그래서인지 마님네 집이 조용하다. 촐랑이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자꾸 거실을 기웃댄다. 삼돌씨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마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마님, 요즘 무슨 걱정거리 있어?"

"아니."

"아니긴 뭘 아니야· 분명히 뭔가 있어. 요즘 말도 잘 안하고 표정도 어둡고……."

"난, 뭐, 만날 헤헤거려야 하나. 별걸 가지고 다 시비야."

"마님, 삼돌이가 뭐 잘 못 한 거 있슈· 에~~ 요즘 장작도 잘 패고, 마당도 열심히 쓸었는디……. 흐흐흐."

삼돌씨가 마님 코를 비트는 시늉을 하며 너스레를 떨지만 마님이 별 반응이 없자 멋쩍은지 티브이 채널만 이리저리 돌린다. 그때 마님 핸드폰이 울리고 삼돌씨가 받는다.

"어? 왜 아빠가 엄마 전화를 받아요?"

"왜? 아빠가 받아서 기분 나쁘냐?"

"하하하, 아니요. 엄마 좀 바꿔주세요."

"야, 인마! 아직도 엄마, 엄마, 엄마타령이냐? 짜식, 마마보이도 아니고……."

삼돌씨가 툴툴대며 핸드폰을 마님 앞에 던진다. 마님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목소리로 받는다.

"아들, 잘 지냈어· 방학인데 집에 안 오니?"

"네, 연말까지는 알바 때문에 못 가요. 엄마, 오늘 저녁에 시간되세요?"

"응, 왜?"

"영화 티켓이 생겨서요. 올 만에 엄마랑 영화 보러 갈까하고요."

"와! 정말? 그럼 지금 나가야 아홉시 타임 거 볼 수 있겠네?"

"네, 얼른 준비하고 나오세요."

"참 내, 기가차서. 아들 전화 받더니 금방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변하네. 마님한테는 아들이 마약이구만."

삼돌씨가 마님 핸드폰을 낚아채서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야! 아빠 티켓은 없냐?"

"아, 저, 그게, 저도 얻은 거라……."

삼돌씨가 마님 핸드폰을 마님 앞에 휙 던지고 툴툴대며 나간다.

"그 나이에 뭐했기에 아직도 애인이 없어서 영화를 제 엄마랑 봐."

마님은 삼돌씨가 그러거나 말거나 콧노래까지 흥얼대며 외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때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응, 아들. 왜?"

"엄마, 어떡해요. 사장님이 다른 알바 생이 펑크 냈다고 나보고 해 달라네요. 영화는 담에 보러가도 되죠?"

"어, 그래? 할 수 없지 뭐."

마님이 힘없이 전화를 끊는다.

삼돌씨가 쌤통이다 하는 얼굴로 방문을 빠끔히 열고 묻는다.

"마님이 아들에게 차인 기념으로 시내 나가서 커피 사줄까?"

마님은 차려입은 외출복을 다시 벗기도 그런지 삼돌씨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 덕에 겨우 마님하고 데이트를 하게 된 삼돌씨는 운전을 하면서 연신 흐흐거린다.

"뭐가 그렇게 좋아?"

"마님, 이제는 깨달아야 해. 마님 곁에는 삼돌이 밖에 없다는 걸. 자식들은 우리가 짝사랑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고."

마님과 삼돌씨는 차를 주차하고 시내 거리를 걸으며 불빛이 새어나오는 상가를 기웃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핀다.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다.

"삼돌씨! 예전에는 성탄 전야에는 무척 들뜬 분위기였잖아.근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 매년 요맘때 시내 돌아다니며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케롤송을 공짜로 얻는 기분이 나름 괜찮았는데……."

삼돌씨가 마님 어깨에 손을 얹고 바짝 당기며 토닥여준다.

"마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겠지만, 우리 마음이 변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 거야."

"그렇겠지."

마님이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한다.

마음의 눈도 간간히 교정이 필요하다.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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