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52회

2018.12.06 17:55:44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장

 동방이 강림의 속내에 대해 나에게 말했다.

 '첫째, 지금의 저승세계를 다스리는 행정 시스템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수만 년 전부터 내려오던 방식 그대로이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인간들의 영혼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둘째, 지금의 저승세계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너무 늙었다.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전혀 읽을 줄 모르고 자기방식만 고집하기 때문에 저승세계의 발전이 전혀 없다.

 셋째, 저승사자나 인간의 수가 굳이 많을 필요는 없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무한의 시간을 좀먹는 대상들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세상이나 저승세계는 물론 지옥을 포함한 여러 단계의 조직관리가 심플해 질 수 있다. 더구나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에서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니 당사자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즉, 우리 젊은 세대가 나서서 이 시스템을 바꿔보자. 염라대왕에서부터 모든 관리자를 몽땅.'

 나는 동방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강림처사의 말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어요. 저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긴 하죠."

 "그래, 그럼 대왕님 자리에 누굴 앉히고 싶다는 겐가?"

 "누구든 능력이 탁월한 자가 그 자리에……."

 "뭐야? 그 말은 강림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말 아닌가?"

 "물론, 그렇겠지요. 그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자니까요."

 "그래, 자네는 뭐라고 대답했나?"

 동방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능력이 탁월한 자 중에 나도 들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콧방귀를 뀌더군요. 너는 아직 너무 어리다고."

 "그래서?"

 동방이 느물느물한 표정을 지으며 뜸을 들였다. 나는 궁금증이 일어 재촉했다.

 "아, 느물대지 말고 빨리 말해보게. 그랬더니 뭐라던가?"

 "자기 일에 동참하면 그에 상응하는 자리를 준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아요?"

 나는 눈만 껌뻑였다. 과연 동방이 뭐라고 대답했을까? 동방의 깊은 지혜를 다 헤아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좋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자네 지금, 대왕님을 배반하겠다고 했나!"

 동방이 고개를 끄떡였다.

 "자리에 연연해서 배반하는 것이 아니고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기가 막혀서 동방을 노려보았다.

 "난 그래도 자네가 다른 사자들과 다른 특별한 자라 믿어왔네만. 오늘 보니 자네도 그저 속물에 지나지 않는구먼."

 내 한숨소리가 발바닥을 통해 땅속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무겁게 들렸다.

 "김 사자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만두게. 입바른 소리 따위는 듣고 싶지 않네."

 동방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사자님 같은 분이 제 옆에 계셔서 너무 든든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강림처사 같은 분도 있어야 저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모든 인연이 다 소중하다는 것도 이번에 배웠습니다."

 늘 내 앞에서 아이처럼 굴던 동방이 새삼 어른 같은 말투로 나를 타이르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와 지금까지 마음을 나누고 지냈던 일이 그저 꿈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시점에서 결단을 내려야했다.

 "나는 자네가 대왕님 편인 줄 알았네. 그래서 저 파렴치한들이 하는 꼴을 막아줄 줄 알고 기다렸지만 이제 진실을 알았으니 나도 이 시점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먼."

 동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 당장 대왕님께 가서 자네들의 일을 말씀드려야겠네."

 동방이 내 팔을 잡았다.

 "이제 자네들 일에 방해가 되는 나를 처리할 때가 온 거겠지?"

 "그럴 수 있다면……."

 "뭐라고?"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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