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39회

2018.06.07 17:31:01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동방이 비밀리에 결집한 조직원은 동방과 나를 포함하여 겨우 다섯 명이었다. 이 다섯 명이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런데도 동방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이 게임은 이길 수 없는 게임 같은데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겐가?"

동방은 나를 보고 빙글거리며 대답했다.

"김 사자님이 제 편이니까요."

"예끼, 놀리지 말게나. 나야, 자네가 억지로 끌어들여 놓지 않았나?"

"김 사자님은 우리 조직이 이상하게 변질되기 시작될 때부터 바로 돌려놓으려고 하셨잖아요?"

"내가? 그게 무슨 말인가? 언제 그랬다는 건지……."

동방은 입술 끝을 올리고 소리 나지 않는 웃음을 표정으로 한참동안 웃고 나서 말했다.

"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요. 지금도 그때, 사자님의 당당한 모습을 생각하면 무언가 하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요."

나는 동방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모르는 일을 저 혼자 저렇게 도취되어 떠드는 걸 보면 간밤에 꾼 꿈을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은 않고 졸다가 꿈을 꾼 게로군."

동방의 눈과 입술이 나를 놀리려고 작정이라도 하듯이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정말 기억나지 않으세요?"

"뭘, 기억하고 말고 할 게 있어야지.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을 사는 내가."

동방은 목을 흠흠, 소리까지 내며 가다듬었다. 그리고 성큼 성큼 몇 발자국을 앞으로 나가더니 누군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되돌아서서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며 단호하면서도 무거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미친놈입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미친놈들입니다."

얼음 속에 박혀 있는 것처럼 경직된 내 마음에서 쨍, 하고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났다. 동방은 지난 해 성과평가를 한다고 발표하던 날, 강림을 향해 저항의 목소리를 냈던 내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동방은 엄숙하면서도 듣는 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호소력을 가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역할은 이승의 사람이 목숨을 다했을 때, 그들을 저승으로 안내하는 자일뿐입니다."

나는 그때 여러 사자들이 했던 것처럼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정한 무게의 인간의 혼을 가져오라는 목표를 주어서 경쟁하도록 했습니다."

나는 다시 그때 그들이 했던 대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를 했다.

"그래서 일부 파렴치한 사자들은 아직 저승으로 갈 때가 안 된 인간의 혼을 몰래 조금 떼어서 목표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나는 그렇지, 당연한 거야, 하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죽은 인간의 혼을 저승으로 편안하고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목표가 필요하겠습니까?"

동방은 마지막 말인 '거기에 무슨 목표가 필요하겠습니까?'를 천천히, 호소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로 내 흉내를 내고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동방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그때의 내게 빙의라도 된 것처럼 걸음걸이까지 내 흉내를 냈다.

나는 넋이 빠진 얼굴로 동방을 바라보기만 했다. 동방이 또 빙글거리며 웃었다.

"이 멋진 연설에 박수 안 치십니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슬쩍 보이고는 눈길을 이리저리 옮겼다.

"김 사자님. 제 모습 멋져 보이죠?"

동방은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다시 물었다.

"지금, 제 모습 엄청 멋지잖아요?"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조금 끄떡였다.

"이 멋진 모습을 하고 제 마음을 사로잡은 분이 바로, 김 사자님이셨거든요. 우리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진 그 분이 지금 제 앞에 서계시다는 걸, 아시나요?"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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