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

2012.10.03 17:29:52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나이 먹어가면서 인격 등급이 높아져야 되는데 배 둘레만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 큰일이네."

마님은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자기 몸을 살피며 궁시랑 댄다.

"삼돌씨, 우리 휴일만이라도 두타산에 다니자. 응? 이러다가 자기나 나나 둘 다 돼지 되겠어."

"삼돌이는 산에 갈 시간에 잠이나 더 잘 거구만유."

삼돌씨는 마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돌아눕는다. 마님은 삼돌씨 귀를 잡아당기며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아이 씨, 귀찮아죽겠네. 마님이나 열심히 다니시라니까!"

마님이 귀를 잡아당기고 허리를 간질이며 조르니까 삼돌씨가 짜증을 낸다.

"치, 배는 나보다 훨 많이 나왔으면서 뭘 믿고 저래."

마님이 툴툴대며 등산화를 신는데 삼돌씨가 길게 하품을 하며 따라 나온다.

"귀찮다며 왜 나와?"

"멧돼지가 마님보고 데이트하자고 할까봐. 감시하려면 삼돌이가 따라가야지."

"피, 멧돼지나 삼돌씨나 외모도 비슷한데 애인 삼지 뭐."

마님 입꼬리가 위로 점점 올라간다.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혼자 산에 오르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삼돌씨와 마님은 헉헉대며 올라가고, 산바람이 지나가면서 두 사람의 땀을 슬쩍 훔쳐간다. 두 사람은 잠시 쉬었다가려고 바위에 걸터앉는다.

"삐, 삐리, 삐약."

"어, 이게 뭔 소리야?"

마님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 들어찬다. 마님은 소리 나는 쪽을 살피며 풀숲을 헤쳐 본다.

"마님, 왜 그래? 멧돼지 새끼라도 본 겨?"

마님 발아래에 이슬에 흠뻑 젖은 아주 작고 까만 병아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삼돌씨! 이리 와 봐. 산에 웬 병아리가 있어."

삼돌씨가 후다닥 달려와서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피식 웃는다.

"병아리가 아니고 꿩 새끼야. 우리 어렸을 적에는 꽁아병아리라고 불렀거든."

"꽁아병아리? 아,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마님은 두 손으로 살며시 꽁아병아리를 감싸 안는다. 마님 손바닥에서 꿈틀대는 꽁아병아리 체온이 느껴진다.

마님은 산을 내려와서 수건으로 젖은 꽁아병아리를 닦아준 다음 가슴에 꼭 안아준다. 어쩔 수 없이 마님을 따라 내려 온 삼돌씨가 어이없어한다.

"마님, 지금 뭐 하는 겨? 산에 가자고 바람 넣은 게 누군데? 올라가다 말고 돌아와서 뭔 짓거리야?"

"그럼 어떡해. 얘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

"버텨내는 자만 살아남는 게 자연의 순리야. 당신이 그런다고 살 거 같아?"

"할 수 있어. 내 체온으로 덥혀서 살려낼 거란 말이야."

한참동안 마님 품에 안겨 잠을 자던 꽁아병아리가 눈을 뜨다가 마님 눈과 딱 마주친다.

"안녕!"

마님이 인사를 하자 꽁아병아리도 삑, 삐약 하고 대꾸한다. 그렇게 꽁아병아리가 마님 집에 입양된 지 삼일이 지났다.

꽁아병아리는 마님이 움직이는 대로 쪼르르 따라다닌다. 마님이 앉아 있으면 마님 다리사이로 파고든다. 어쩌나보려고 슬쩍 밀쳐내면 다시 쪼르르 와서 파고든다.

"삼돌씨, 내가 자기 엄마인 줄 아나 봐. 히히."

"그러다 좋아서 침까지 흘리겠슈. 하긴 그 나이에 막둥이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으실까."

삼돌씨가 눈꼴사납다는 시늉을 하며 밖으로 나가면서 투덜댄다. 거실 안을 엿보고 있던 흰둥이도 고개를 끄떡이며 삼돌씨 편을 들어준다.

삼돌씨와 흰둥이, 두 남자는 꽁아병아리를 향한 질투심으로 모처럼 한마음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꽁아병아리는 의기양양하게 거실을 누비고 다닌다.

누군가와 조건 없이 접촉할 때 전달되는 따뜻함이 곧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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