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5회

2016.04.28 14:12:15

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오늘은 각 구역별 저승사자들이 모여서 성과보고회를 갖는 날이다. 내가 처음 저승사자 일을 맡았을 때는 이런 요사스런 회의 따위는 하지 않았다. 각자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면 되었다. 물론 뇌물을 받고 인간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징계에 처하게 되는 일은 가끔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승사자들을 다 모아놓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정기적으로 저승사자들을 모아놓고 목표를 채우라느니, 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라느니, 뇌물을 받고 질서를 깨뜨리는 사자에게 징계 수위를 높이겠다느니 별의 별 핑계를 대고 닦달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에 3인 1조로 구성된 최고의 팀이 있었다. 혜원, 덕춘, 강림이 한조로 활동하는 팀이었다. 그때는 모든 자료를 원시적으로 관리하던 시절이었으니 혹여 착오로 엉뚱한 사람의 혼을 거둬들이지 않기 위해 팀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진화속도가 빨라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을 전산화해서 관리하듯 저승세계도 마찬가지로 시스템화되었다. 그러니 명부관리에 오류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개인별 실적과 평가를 중시하며 저승사자들을 교묘하게 경쟁하게 만들다보니 팀보다는 개인별 활동이 더 효율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추세다.

그 당시 한 조로 활동하던 염라차사 강림은 이제 내가 속한 구역의 777명의 저승사자들을 교육시키고 평가를 담당하는 자가 되었다. 뭐 그 시절에도 강림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자였다. 영민하고 날렵하며 처세술 또한 뛰어나 염라대왕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자였기에 동료들보다 한 차원 높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지난날의 동료였던 저승사자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위치에서 똑 부러지게 잘 하고 있다. 일부 사자들은 그런 그에 대한 불만이 많다.

"저 아니면 사자가 없는 줄 아는지 어깨에 힘주는 꼴을 보면 배알이 뒤틀린다니까."

"그 자는 남의 역할까지 넘나들며 지 일 인양 참견하고 생색을 내잖은가?"

"그 것 만이라면 괜찮지. 문제는 당사자 몰래 못된 짓은 다해놓고 그것도 모자라 아무개 사자는 무능하다니 정신상태가 썩어빠졌느니 하며 염라대왕께 일러바친다니까."

"염라대왕이 문제가 더 많아. 그렇게 강림도령만 싸고돌면 다른 사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것 아냐. 그러면 누가 신바람 나게 일을 하느냐고· 나 원 참 더러워서 이 짓도 못해먹겠구먼."

"두고 봐. 저 싸가지가 나중에는 염라대왕 자리를 차지하고 말걸."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 그러면 염라대왕은 뭐가 되는 거여?"

"하, 이 사자보게. 눈치가 그렇게 없나· 자기가 키운 호랑이 새끼에게 잡아먹히는 거지· 강림도령이 지금은 고양이인척 하고 꼬리를 살랑거리지만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내고 말걸세."

"허허. 얼마나 오랫동안 내려온 저승세계의 질서인데…. 그렇게 쉽게 무너지겠나."

"이 봐. 인간 세상에도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잖은가. 저승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설마가 염라대왕을 잡아먹을 수도 있지. 암. 그렇고말고."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일찍 온 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조직에 대한 불만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왔다. 저들은 뒤에서만 저러지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비루한 사자들인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문득 버들강아지를 들여다보고 행복한 표정을 짓던 여자가 생각났다. 내가 혼을 조금씩 떼어내려고 마음먹고 첫 번째 목표물로 삼았던 그 어리바리한 여자다.

그 여자를 떠올리자 조금 전에 올라오던 욕지기가 슬며시 내려가면서 내 뱃속을 톡톡 건드렸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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