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31회

2018.02.01 13:40:59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나의 존재와 저승세계의 존재까지 실존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 때문에 몹시 혼란한 상태에 빠진 사이에 2차 퇴출자 공고문이 떴다.

제 2차(실적심사) 결과

- 기 준 : 1차에서 하위 10%(77명)에 속한 자 중 하위 7%(5명) * 목표 미달성자

- 대상자 : 동방, 000, 000, 000, 000.

내 눈에는 동방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몇 명인지, 누구누구인지, 무엇을 잘못해서 퇴출대상자가 되었는지. 하얀 종이 위에 검은색으로 써진 동방이란 글자만이 점점 커지면서 무한히 확대되고 있었다.

오열하는 자들보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헉! 이게,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나는 오열하면서 되돌아서다가 누군가와 부딪혔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인지 그의 어깨에 내 상채가 실리고 말았다. 그가 그런 나를 껴안았다.

"아이쿠! 미안하오."

그에게 기댄 상채를 바로 펴고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눈앞에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얼굴을 보니 동방이었다. 동방을 마주치자 눈앞이 더 깜깜해졌다. 동방은 아직 공고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보지 못했는지 태연하게 나에게 물었다.

"사자님. 얼굴빛이?"

나는 얼른 동방의 허리를 잡고 무리에서 그를 끄집어냈다.

"왜 그러시는데요?"

"잠깐 나와 이야기 좀 나눔세."

동방은 내 팔에 매달려 일부러 질질 끌려오는 시늉을 했다. 천진스런 동방을 보니 내 뱃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 입을 열면 내 내장을 모두 태운 역겨운 냄새와 함께 강렬한 불덩이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사자님! 사자님!"

그는 한참을 끌려오면서 나를 연신 불렀다. 그를 잃을 수 있다는 슬픔이 내 목을 꽉 매웠다. 나는 동방을 와락 껴안았다.

"헤헤. 사자님 다른 사자들이 보면 오해해요. 이거, 너무 찐하잖아요."

기어코 내 목에서 바동바동 나오려던 흐느낌이 툭 터지고 말았다.

"동방. 어찌하면 좋겠나? 그 이름이 내 이름이었어야하는데……. 크흑흑."

"아이, 답답하게 왜 그러세요? 뭣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혹시 2차 퇴출대상자에 제가 있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놀라서 안았던 팔에 힘이 풀렸다.

"자네, 알고 있었나?"

"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간신히 입속에 조금 남아있는 침을 모아 삼키고 동방에게 물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태평할 수 있단 말인가?"

"뭐, 예상했었으니까요. 제가 그동안 실적에는 관심을 안두고 돌아다녔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좀 전까지 쳐 올라왔던 분노와 슬픔대신 맥이 풀렸다. 나는 또다시 동방의 어깨에 상채를 얹었다. 이제 숨 쉬는 자체도 귀찮아졌다. 동방은 한참을 자기의 어깨를 빌려주더니 천천히 나를 세우고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정말이지 질질 끌려갔다.

동방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내 어깨에 팔을 얹고 아이를 재우듯 토닥여주었다.

"동방. 무섭지?"

"조금요."

"그런데 어찌 그리 태평한가?"

동방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한참동안 올려다보고는 나에게 들려주는 것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입속에서 천천히 굴렸다. 그래서 나는 그 뜻을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려움 뒤에는 과연 뭐가 있을까?"

나는 동방의 옆얼굴을 무심히 바라봤다.

"무슨 말인가?"

동방은 대답대신 씩, 웃으며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그의 손이 저 높은 나뭇가지에 달린 잎을 후루룩 훑을 것만 같았다.

그때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젊은 여자가 우리 옆에 앉았다. 동방은 아이에게 눈길을 주고 까꿍! 했다.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어머! 어머! 얘 봐. 나뭇잎 흔들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니?"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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