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를 공개수배 합니다

2012.02.22 18:03:17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근무

마님은 직장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마을 아낙들처럼 산과 들에서 나는 제철 푸성귀를 오물조물 무쳐서 맛깔스런 밥상을 차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마님을 보고 흉을 보기는커녕 밑반찬이며 푸성귀를 나누워 준다. 처음에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던 마님도 요즈음은 당연하다는 듯이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오늘도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는데 낯선 김치 통이 마님을 맞는다.

"샛별이 할머니가 갖다 놓으셨나?"

마님은 반가운 마음에 핸드백을 거실로 휙 던지고 김치 통을 식탁 위에 올려놓자마자 뚜껑부터 열어본다. 지난 가을에 수확해서 땅속에 묻어 두었던 무와 배추로 만든 나박김치다. 국물이 얼큰하고 시원해 보인다.

"와! 맛있겠다."

마님은 얼른 먹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으로 얇고 네모진 무를 하나 집어먹어본다.

"음, 바로 이런 맛이야. 그런데 왜 내가 하면 이런 맛이 안 나지?"

마님은 샛별이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할머니, 번번이 반찬 같다주셔서 맛있게 잘 먹고 있어요."

"뭔 소리여?"

"나박김치 갖다놓고 가시지 않으셨어요?"

"아녀. 난 안 가다놨어."

"그럼, 지난번에 깻잎조림은요?"

"그것도 아닌디."

마님은 용강이 할머니, 쌍둥이 할머니, 하근이 아저씨네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다들 아니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장님댁에 전화를 건다.

"저희집에 김치 같다 놓으셨어요?" "아니."

"그럼 지난번에 깻잎은요?" "안 갖다 놨어."

"그럼 도대체 누가 갖다 놓는 거지요? 저희 집에 돌려주지 못한 반찬통이 엄청 많거든요."

"뭘 걱정혀. 우렁각시가 윤경이네만 들락거리는구먼. 하하하."

마님은 그동안 누군지는 모르지만 갖다놓은 반찬을 맛있게 먹고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빈 그릇조차 돌려주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다.

"삼돌씨, 얻어먹는 건 좋은데 인사도 못하니까 영 찜찜해. 뭐 좋은 방법 좀 없을까?"

"마님, 우리 현상금 걸고 공개수배 할까?"

마님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한 말인데 삼돌씨가 장난을 친다고 화를 버럭 낸다.

"이 사람아.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이야. 나누고도 안 한척 하는 마음이 바로 시골 인심이거든."

마님은 삼돌씨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리고 아예 나박김치를 그릇에 담아 밥도 없이 짭짭 소리까지 내며 먹는다.

"자꾸 공짜로 얻어먹다보니 이제 다 내꺼 같단 말이야. 이게 도대체 좋은 일이야? 나쁜 일이야?"

"으이고, 못 말려. 마님 맘대로 생각하셔."

아마도 마을 어르신들은 아직 덜 여문 천방지축 부부의 마음을 여물게 하려고 우렁각시를 자처했나보다.

진정한 나눔은 자랑을 하지 않을 때 더 값이 나간다.

- 천방지축 마님 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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