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1회

2016.01.14 14:08:07

권영이

증평군청 문화체육과장

"이제 이 짓거리로 밥 먹고 살기도 힘들군. 빌어먹을."

나는 인간의 혼을 잡아가는 일을 하는 저승사자다. 나는 이 일을 사명감으로 해 왔다.

"경쟁이 여간 치열해야지. 젠장."

그런데 이제 그런 개뼈다귀 같은 사명감 따위는 진즉에 개한테 던져버렸다.

"아, 오늘은 어떤 연놈의 혼을 등쳐먹지."

그저 하루하루 내 한 목숨 연명해 나가는 걸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삼백년 전에 나는 저승사자라는 말단 관직(官職) 한 자리라도 얻어서 이 한 몸 삼시세끼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저승사자 자격증 시험을 쳤다. 그리고 주변 사자(死者)들의 부러움을 사며 떡하니 붙었다.

그때 내게 맡겨진 일은 일 년에 인간의 혼 250그램을 잡아가는 거였다. 인간 한 사람의 혼 무게가 평균 21그램이니 무거운 혼이 많다면 사자(死者)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고, 가벼운 혼이 많을 경우는 사자(死者)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그래봐야 한 둘 차이지만 그래도 관의 업무는 정확성이 생명이니 그램으로 표기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그때는 그래도 쉬엄쉬엄 일을 해도 내 몫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저승사자도 많지 않아 저승사자들끼리 정도 나누고 의리도 지키면서 일을 했으니 그냥저냥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인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그러니 죽는 연놈들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많은 사자(死者)들이 저승에 가서도 치열한 사투를 벌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사자(死者)들은 너도나도 저승사자 말직에 입문하려고 했다. 그래서 갈수록 저승사자 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서로 배정받은 몫을 완수하려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인간이 많이 늘어났으니 잡아갈 혼도 많지 않겠느냐고 묻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삼백년 전에는 인간들 평균 수명이 50년 정도밖에 안됐지만 지금은 이것들이 백세시대라고 떠들어댈 만큼 오래 산다.

"까짓것 막 잡아들이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간 세상에도 '대한민국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걸 만들어 놓은 것처럼 우리 사자들의 세계에도 그런 룰이 있다. 그러니까 잡아가고 싶다고 저승사자 맘대로 잡아갈 수가 없다는 거다.

인간이 저마다 부여받고 인간세상으로 온 수명(壽命)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거나말거나 일 년에 250그램의 혼을 잡아가야하니 저승사자들도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꼭, 통째로 잡아갈 수 없다면 조금씩 떼어 가면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인간들도 물건을 살 때 할부로 사고 그러던데 우리도 그런 시스템을 도입 해볼까?"

요따위 생각을 하는 저승사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들도 숫자가 많으면 별의별 인간이 다 있듯이 저승사자도 많다보니 잔대글빡 잘 굴리는 놈에, 툭하면 이간질 하는 놈에,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놈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저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놈에, 별의별 놈이 다 있다.

참, 깜빡 까먹고 미리 말을 안했다. 내가 놈, 놈 하는 건 사내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저승사자는 사내도 아니고 계집도 아닌 중성이다.

내가 놈이라고 부르는 건 그 말이 감칠맛이 나서 자꾸 써먹고 싶어서다. 그러니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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