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뇨 새댁

2013.05.01 15:06:16

권영이

동화작가·증평군청

마님네 마을에는 '안뇨 새댁' 이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에서 시집온 새댁이 살고 있다. 이 새댁은 금방 보고 또 보는 사람한테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뇨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집 앞에서 서성이다 내 차가 지나가는 걸 보면 양 팔을 들고 손을 흔들며 '안뇨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시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주방에서 보면 후다닥 쫒아가서 '안뇨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단다. 마을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안뇨 새댁이다.

"자네는 싹싹한 며느리를 둬서 좋겄어."

"그려, 좋구먼. 을마나 좋으면 뒷간을 못 가겠나. 볼일 보고 나오면 딱 버티고 서 있다가 인사를 허니. 원, 볼 일도 맘대로 못 본 다니께."

"에끼! 이 사람, 배부른 소리 좀 그만혀. 나는 똥빠지게 고생 혀서 공부시킨 새끼들이 일 년에 한두 번 코빼기 비치는 게 단디, 눈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는 자식이 있으면 날마다 업어주겄네."

마을 분들이 모이면 안뇨 새댁이 양념으로 항상 등장한다. 나또한 새댁과 마주친 날이면 왠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그렇게 마을 분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새댁이 웃지 않을 때가 있는데 밥을 먹을 때이다. 우리 음식이 맵고 짜서인지 새댁이 적응을 못한단다. 그래서인지 처음 시집올 때보다 많이 말랐다.

마님은 그런 새댁이 안쓰러워 새댁 입에 맞는 음식이 뭐가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밀가루에 날콩가루를 약간 섞어 반죽을 하고 밀대로 민다. 삼돌씨가 이 모습을 보고 벙긋거린다.

"마님, 삼돌이가 수제비 국수 먹고 싶은 걸 어찌 알았슈?"

"흥, 이건 삼돌씨 꺼 아니거든."

쟁반만 하게 민 반죽 위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 골고루 편 다음 반으로 접고, 다시 밀가루를 솔솔 뿌리고 또 접고, 또 접고, 또 접어서 칼로 굵직굵직하게 썬다. 감자로 구수하게 우려낸 물에 방금 민 국수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마님네는 칼국수 보다는 굵고 수제비보다는 가늘 게 썬 이 국수를 '수제비 국수'라고 부르며 가끔 해먹는다.

마님이 새댁에게 전화를 걸어 맛있는 거 먹으러 빨리 오라고 한다. 쏜살같이 달려 온 새댁은 큰 대접에 가득 담긴 국수를 보고 눈과 입이 활짝 열리며 환호성을 지른다.

"와, 우동! 와, 우리 우동!"

마님이 젓가락을 집어 새댁에게 건네며 얼른 먹어보라고 눈짓을 한다. 새댁이 국수 한 가닥을 입에 넣어보더니 마님을 보고 최고라며 엄지를 올린다.

후루룩 쩝쩝거리며 순식간에 두 그릇을 먹어치운 새댁이 불룩해진 배를 탕탕 치며 웃는다. 그 모습을 보던 삼돌씨도 따라 웃는다. 흐뭇한 얼굴로 커피를 타려고 일어서는 마님을 안뇨 새댁이 얼른 자리에 앉힌다.

"커피, 미츠코가 서비스 하무니다."

안뇨 새댁이 타 온 커피를 들고 마당으로 나온 세 사람 얼굴이 수제비 칼국수 가락처럼 부들부들해 보인다.

"여기 우동, 우리 우동보다 마시써요."

안뇨 새댁이 손을 올려 짱이라고 외치는 바람에 커피 잔이 흔들린다. 그 바람에 새댁 옷에 커피가 흘러내린다. 안뇨 새댁 얼굴에 가득 담긴 웃음도 커피를 따라 흘러내린다. 마님네 마당에 세 사람의 웃음이 가득 찬다.

세상에서 가장 전염성이 강한 것은 웃음이다.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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