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30회

2018.01.04 13:33:28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요 며칠, 머릿속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진등 사자의 가짜 염라대왕 소문에 관한 말을 듣고 나서부터 나 자신의 존재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존재하는 자인가· 우주는 거대한 시뮬레이션이고 나는 그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일 뿐인가·"

지금까지의 혼란스러움은 저승세계에서 퇴출되면 윤회나 혼의 진화단계에서도 벗어나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저승사자들의 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방의 정체에 관한 궁금증도 한몫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차원의 혼란이 아니다. "저승세계 자체를 부정해야하는 단계에 이른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상인 것일까·"

나는 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그리고 재촉했다.

"도대체 너는 아는 게 무엇인가· 네가 있는 곳도 제대로 모르면서 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인가·"

머릿속에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개구리 떼가 귀가 따갑도록 울어제켰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구르르."

나는 두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고 쪼그려 앉아 머리를 흔들었다.

"아, 아. 제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때, 내 어깨를 누군가 감싸 안았다. 나는 그가 동방이라는 걸 알았다. 동방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었으니까. 그리고 그 온기는 날씨와도 관계없이, 그의 기분과도 관계없이 변함없었으니까.

"어, 언제 왔나·"

동방도 나를 따라 쪼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맞추었다.

"김 사자님. 무슨 일 있으세요·"

"어· 아닐세."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지금 사자님 얼굴이 엉망인걸요."

"그렇게 보이나·"

동방은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김 사자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동방은 평소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생글거리던 모습을 싹 감추고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채근했다.

"왜, 그런 얼굴이신 거냐고요·"

"그러게.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네."

동방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따라 김 사자님답지 않게."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동방이 내 어깨를 다시 감싸 안았다. 무엇인가가 밑바닥에서 울컥 올라왔다. 그러는 바람에 내 어깨가 조금 흔들렸다. 동방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김 사자님. 힘들어마세요. 사자님 곁에는 많은 이들이 있어요. 그들은 사자님이 자기들의 힘이 될 거라고 믿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자님이 이렇게 약해지시면 안 되잖아요."

나는 동방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댔다. 동방은 내 등을 도닥거려주었다. 아련하게 다가오는 정체모를 감정이 내 온몸을 쓸고 내려갔다.

'어, 이 느낌, 이게 뭐지· 언젠가 느껴봤던 것 같은데…….'

동방의 체온이 내 몸에 전달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동방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허허. 동방. 미안하이. 내가 좀 주책을 부렸지·"

"헤헤. 김 사자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시니 저는 기쁜데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동방을 바라봤다.

"모든 것에 달관한 듯 무심해보이던 김 사자님보다 지금 모습이 더 좋거든요."

"......·"

"이제 우리 저승세계 돌아가는 사태에 관심을 보이실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동방은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생글거렸다. 나도 그런 동방을 보고 히죽 웃었다. 조금 전까지 복잡하고 어수선한 마음이 아주 고요해졌다. 가짜 염라대왕설 따위는 까마득한 옛이야기에서 들은 것처럼 느껴졌다.

"동방. 지금, 우리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거 맞을까·"

동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자네와 내가 말일세. 게임 속의 캐릭터가 아닌지도 모르잖은가·"

"우와! 그거 재미있는데요."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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